고릉

  • 역사
  • 유적
  • 고려 후기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의 비인 제국대장공주, 장목왕후의 능. 왕릉.
이칭
  • 이칭홀도로게리미실(忽都魯揭里迷失)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권오국
  • 최종수정 2024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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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의 비인 제국대장공주, 장목왕후의 능. 왕릉.

내용 및 특징

제국대장공주는 1259년 음력 6월 28일, 원 세조(元 世祖, 쿠빌라이)와 아속진가돈(阿速眞可敦)의 딸로 태어났다. 성은 보르지긴(孛儿支斤, 패아지근) 또는 기악온(奇渥溫), 이름은 쿠틀룩 켈미쉬(忽都魯揭里迷失, 홀도로게리미실, 또는 홀독겁미사)이다. 그녀는 5월 21일 현성사에서 3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릉은 고릉(高陵)이며, 같은 해 9월에 장목인명왕후(莊穆仁明王后)의 시호를 받았다.

릉역이 3단으로 되고 상계(上階)에는 병풍석이 둘린 봉분과 석수(石獸)를 배치하였는데 병풍석은 면석(面石), 우석(隅石), 정지대석(整地臺石), 만석(滿石), 인석(引石) 등을 모두 갖춘 12각의 것으로 십이지신은 수수인신(獸首人身) 형식으로 조복(朝服)에 홀을 든 형상이다. 석난간은 잔석만 있을 뿐 상계(上階)에 있어야 할 상석(床石), 망주석(望柱石)은 보이지 않는다. 제2단면에는 조선 고종때 세운 표석이 있고 제3단에 2쌍의 석인이 서 있다. 석인은 양관(梁冠)에 조복(朝服)을 입은 형상이나 만듦새가 거칠다. 원 공주의 릉이라 하여 값진 부장품이 있을 것으로 여겨 이미 충혜왕(忠惠王) 때 도굴을 당한 적이 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도굴을 당하였다고 한다. 1978년 북한에서 발굴하여 벽화의 흔적을 발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북한문화재해설집』Ⅰ(국립문화재연구소 편, 1997)

  • - 『북한향토사학자가 쓴 개성이야기』(송경록, 푸른숲,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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