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있는 조선후기 두문동 72현'과 관련된 비.
내용
1740년 영조는 이곳을 지나면서(영조 16년 9월) 승지에게 그들의 충절을 기리는 시를 짓게 하였다. 1751년(영조 27년 9월)영조는 고려두문동 72인의 충신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고, 어필로써 “고려 충신의 명성이 지금도 남아 있으니, 특별히 그 동에 (비를) 세워 그 절개를 표창한다”(勝國忠臣今焉在 特竪其洞表其節)는 14자를 써주고 비를 세우도록 하명하였다.
비의 형식은 거북받침과 비몸, 합각지붕의 비머리로 되었다. 비의 구성과 크기, 조각 등은 표충비와 기본적으로 같다. 비의 음기에는 고려 충신 72명을 추모하여 왕의 특별지시에 따라 그 손자벌 되는 사람이 이 비를 세웠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지명이 품은 한국사』2(이은식, 타오름, 2010)
- 『조선향토대백과』2(한국 평화문제연구소·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5)
- 『두문동 일흔 두 분』(최권흥, 다운샘, 1999)
- 『조선유적유물도감』16(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편, 1994)
- 『우리나라력사유적』(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3)
- 북한문화재자료관(north.nri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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