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王隆)의 묘이다. 왕륭의 초명은 용건(龍建), 자는 문명(文明)이다. 부인은 위숙왕후(威肅王后) 한씨(韓氏)로 몽부인(夢夫人)이라고도 한다. 897년에 금성군(金城郡)에서 죽으니 영안성(永安城) 강변의 석굴에 장사지내고 능호를 창릉(昌陵)이라 하였다. 후일 왕건이 임금이 되자 추존하여 세조위무대왕(世祖威武大王)이라 하였다. 1027년(현종 18)에 시호를 가상(加上)하여 원렬(元烈)이라 하였으며, 1253년(고종 40)에 또 가하여 민혜(敏惠)라 하였다.
대부분의 고려 왕릉은 산에 위치해 있지만, 왕륭의 무덤만은 예성강가에 만들어졌다. 왕륭이 예성강 부근의 영안성을 근거로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벽란도 남쪽의 창릉포라는 지명은 창릉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