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자위왕설(十八子爲王說)은 중국 남북조 시기에 유행해 당(唐)의 건국을 예언한 참설이다. 이(李)자를 파자(破字)하여 십팔자(十八子), 혹은 목자(木子)로 표현한 것이다. 고려의 십팔자위왕설이 언제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무신집권기에는 옛 참설의 ‘용손십이진(龍孫十二盡)’ 라는 예언과 함께 유행하였다. 조선 초 권근(權近)이 작성한 「건원릉신도비명(健元陵神道碑銘)」에서는 단군(檀君) 시기의 것으로 전해지는 「구변도(九變圖)」에 십팔자와 관련된 참설이 있다고 하였는데 정확한 문구는 밝히지 않았으며, 현재 「구변도」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려에서는 인종대 이자겸(李資謙)과 무신집권기 이의민(李義旼)이 이를 혹신하였다. 이자겸은 인종의 외조부이면서도 인종 즉위 후 자신의 두 딸을 인종의 왕비로 삼게 하여 당대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십팔자위왕설을 믿고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며 인종을 억류한 상태에서 독살을 꾀하였다. 무신집권기 권력자였던 이의민도 이 예언에 따라 왕위를 노리고 명사(名士)들을 등용하여 명망을 얻고자 하였다. 이의민의 고향인 경주 인근에서 김사미(金沙彌), 효심(孝心) 등의 반란이 일어나자, 이의민이 그들과 내통하여 고려 왕조를 전복하려 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한편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이후 이성계(李成桂)를 지칭하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을 노래하는 동요가 크게 유행했다. ‘목자’ 역시 이(李)의 파자라는 점에서 십팔자위왕설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십팔자위왕설은 고려 시기 여러 차례 왕위를 넘보았던 왕실 외척이나 실력 있는 무신들에 의해 유용한 예언으로서 퍼트려졌다. 최종적으로는 이 참설은 이성계에 의한 조선의 건국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