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원 출생. 이명 권윤환. 필명 권환(權煥).
일본 야마가타고등학교(山形高等學校)를 마치고 1927년 일본 경도제국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중외일보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학 재학 중 사상 불순 혐의로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는데, 1929년 일본유학생잡지 『학조(學潮)』에 작품을 실어 필화사건을 겪었다.
1929년카프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어 볼셰비키 예술대중화론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1931년 제1차 카프검거 사건에서 불기소처분을 받았고 1935년 제2차 카프검거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권환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수용하면서 과거 주장한 볼셰비키 대중화론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한다. 그가 ‘전위의 눈으로 세계를 보라’, ‘당의 문학’으로 간명하게 주장한 것이 볼셰비키 대중화론으로 이것은 당파성에 근거한 문학이론이었다. 현실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당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성에 문학적 역할이 놓여 있었다. 노동자, 농민의 무산자 계급에 대한 이해 역시 선전선동의 대상 정도로 파악했다고 평가받는다.
김효식(金孝植, 南天)ㆍ임화(林和) 등과 함께 일본에서 귀국하여 김기진(金基鎭)ㆍ박영희(朴英熙) 등 구 카프계를 프로문학예술동맹에서 축출하고 소장파를 형성하여 우리나라 프로문학의 주도권을 잡기도 하였다. 제삼전선파(第三戰線派)가 주동이 된 잡지 『무산자(無産者)』의 간행에도 관여하였다.
1935년 이후 『중외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2차 카프검거에 연루 되었으나 집행유예로 나온 후, 조선여자의학강습소 강사와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사서를 지냈다. 광복이후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산하 전국문학자대회에서 조직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며, 1946년 전국문학자대회에서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 8월『음악과 시』 제1호에 처음으로 시 「머리를 땅까지 숙일 때까지」를 발표하였고, 1932년 『문학건설』 제1호에 「아버지 김첨지 어서 갑시다! 쇠돌아 갓난아 어서 가자!」 등을 발표하였으나, 문학성 이전에 당파성을 목적으로 하는 구호가 강하게 노출된 작품이다.
저서로는 『자화상(自畵像)』ㆍ『윤리(倫理)』ㆍ『동결(凍結)』 등 3권의 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