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 출생. 호 파하(巴下)
1948년 『예술조선』2호에 시 「기산부(箕山賦)」, 「죽림도(竹林圖)」가 당선되었고, 다음해 『문예』(1949.11)에 「언덕에서」를 추천받아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기산부」, 「죽림도」는 이념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서정시의 세계로 예술성에서 크게 평가받았다. 당시 한국정치현실과는 달리 동양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고결한 정신세계, 영혼의 순수성을 추구한 작품으로 신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오히려 동양관점에서 기산에 은거한 선사들을 시적세계로 삼으면서 도를 추구하는 달관의 경지는 현실의 정치적 대립을 극복하는 신선함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는 장자를 탐독하면서 불교적, 자연적 세계를 시로 쓰게 되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한국전쟁 중에 피난지 마산에서 발간한 시집 『향미사(響尾蛇)』(문예사, 1953)는 기독교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전쟁이 나고 50여일 만에 60여 편의 시를 썼고 그 가운데 28편을 골라 시집으로 묶었다. 전쟁경험을 통해 창세기 신화에 주목하게 되었고 피난생활에서 얻은 폐병으로 인한 자신의 내적체험을 시화한 것이다. 전쟁으로 낙원을 잃어버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등이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적인 시각을 불러왔다. 그는 삶의 고통을 직접 지시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사막 이미지를 불러오거나 죽음세계 이미지를 대상화한다. 이런 경향은 삶의 현장성이 줄어드는 감이 없지 않으나 기독교적인 체험 안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서울 수복 후, 서울로 돌아와 시를 쓰면서 동양고전 역서를 출간하였다. 불교학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 『법구경의 진리』와 『깨침의 미학』을 비롯한 수십 권의 불교 관련 서적을 저술하였고, 『당시신역』(성문학, 1961), 『시경』(현암사, 1967), 『소월의 시』(현암사,1966)와 불교경전 역서도 출간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매주 정기적으로 사찰에서 불경강의를 하였다. 한국현대시인협회가 펴낸 앤솔로지 『한국현대시선』(한겨레출판사,1979)에 「인수봉(人壽峰)」을 발표했는데 자연과 부처가 동일한 일체를 이루는 세계를 다룬다.
1979∼1981년 문인협회 부이사장, 1985년 현대시인협회 회장, 1996년 공초(空超) 오상순을 기리는 공초숭모회 회장을 지냈다.
그의 문학세계는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데 기독교, 불교의 경계에 머물지 않는다. 성서를 통한 체험에서 원죄의식, 낙원상실에 대한 체험을 시적으로 구현해 냈으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불교적 세계와 조화를 이뤄 인간 정신의 세계를 확장하려고 시도하였다.
한국문학가협회상(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