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규수서화연구회 부회장을 역임한 서화가.
개설
생애 및 활동
1921년 4월 18일 신알배터(申謁琲攄)⋅손정규(孫貞圭)⋅성의경(成義敬)⋅임영신(任永信)과 함께 여성의 문화향상을 촉진하고 생활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여성단체로 조선여자청년회(朝鮮女子靑年會)를 조직하였다. 1922년 여성만을 교육하는 서화교육기관인 창신서화연구회가 조직되자 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23년 4월 1일에는 규수서화연구회(閨秀書畵硏究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글씨는 행서(行書)⋅초서(草書)⋅예서(隸書)를 잘 썼고, 그림은 사군자를 잘 그렸는데, 특히 난죽(蘭竹)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예서(隸書)」, 「초서(草書)」가 입선하고 이듬해 「예서(隸書)」로 입선한 것을 비롯하여, 수차례 서예와 사군자로 입선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1922년에는 금강산의 사찰에 대자를 써주고 이것을 석벽에 새기도록 했다고 하는데, 금강산의 유점사(楡岾寺) 효운동(曉雲洞)의 석벽(石壁)에 ‘五十三佛(오십삼불)’의 대자(大字)가 전한다.
1936년 젊은 나이로 사망하여 전하는 작품이 많지 않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26. 5. 20.)
- 『매일신보』(1926. 5. 29.)
- 『한국역대서화가사전(上)』(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한국서화가인명사전』(한문영, 범우사, 2000)
- 『한국근대미술의역사』(최열, 열화당, 1998)
- 『한국근세여성사화』(이옥수, 규문각, 198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