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황종하는 일제강점기 황경하, 황성하, 황용하와 함께 ‘황씨 4형제전’을 개최한 서화가이다. 1922년 2회 ‘문인서화전’에서 초서가 입선하면서 서화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1922년 12월 동생들과 함께 고향 개성에 송도서화연구회를 열고 서화교육을 실시하였다. 1924년에는 연구회를 군산으로 옮기고 명칭도 서화연구소로 바꾸어 운영하였다. 형제 4명이 서화가로 활동하며 전국을 돌며 함께 전시를 열었다. 호랑이 그림을 잘 그려서 ‘황호랑이’라고 불렸고, 중국 역대 유명 화가를 사숙하여 형제 중 가장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정의
일제강점기 황경하, 황성하, 황용하와 함께 ‘황씨 4형제전’을 개최한 서화가.
개설
생애
1922년 2회 문인협회 주최의 ‘문인서화전(文人書畵展)’에서 초서(草書)가 입선되면서 서화가로 활동하였다. 1922년 12월 2일 동생들인 황성하, 황경하, 황용하와 함께 고향인 개성의 동본정(東本町) 452번지에 송도서화연구회(松都書畵硏究會)를 열고 학생을 모집하여 서화교육을 실시하였다. 또 12월 개성유지들이 고려미술공업진흥회를 조직하자 동생들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4년에는 군산(群山)으로 내려가면서 송도서화연구회를 군산 개복동(開福洞)으로 옮기고 명칭도 서화연구소(書畵硏究所)로 바꾸어 운영하였다.
1928년 겨울부터 8년 동안 통영ㆍ진주ㆍ밀양ㆍ만주ㆍ중국 등지를 유람하면서 스케치 기행을 하였다. 1936년 서울로 이주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호랑이 그림에 몰두하였으며, 이후 그의 호랑이 그림은 외국사절들을 위한 선물용으로 인기가 있었다. 1943년 황해도 연안으로 이주하여 6년을 거주하였으나, 서울에 머무르던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둘째 동생 황성하와 함께 서울에 정착하였다. 1952년 66세로 타계하였다.
호랑이 그림을 잘 그려서 ‘황호랑이’라고 불렸고, 중국 역대 유명화가를 사숙하여 형제 중 가장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활동사항
1924년 5월 황종하, 황용하의 작품을 비롯하여 송도서화연구회(松都書畵硏究會) 학생들의 작품을 포함한 제1회 작품전람회를 개최하였다. 1926년 1월에는 군산 공회당에서 ‘황씨 사형제전’이 있었고, 12월에는 마산에서 ‘사형제전’이 열렸다. 1927년 5월에도 군산 공회당에서 ‘황씨사형제전람회’가 열렸다. 1930년 12월에는 군산에서 동아일보와 매일신보의 후원으로 ‘황씨사형제서화전람회(黃氏四兄弟書畵展覽會)’를 개최하였다. 또 고향인 개성지역의 여러 전람회에도 동참하였다.
1929년 8월 개성의 유지들이 수집한 당대(當代) 개성지역의 명화가(名畵家)의 작품과 고서화(古書畵)를 진열한 ‘송도미술전람회(松都美術展覽會)’에는 황종하, 황성하, 황용하의 작품 백여 점이 특별 전시되었고, 1937년 7월, 개성 출신 동경 유학생들의 친목 모임인 송경(松京) 학우회 주최로 개성 중앙회관 강당에서 열린 ‘향토미술전람회’에도 사형제가 함께 작품을 출품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1800∼1945 한국미술사사전』(최열, 열화당, 1997)
- 「서화가 황씨 사형제의 작품세계」(송희경, 『동양고전연구』33, 2008)
- 「우청 황성하의 회화 연구」(송희경, 『미술사학보』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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