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싱가포르공화국(Republic of Singapore)으로, 영연방의 하나이다. 싱가포르 섬과 그 부속도서 및 크리스마스제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820㎞이다.
면적은 647㎢, 인구는 567만 4472명(2015년 현재), 수도는 싱가포르(Singapore)이다.
종족구성은 중국계 76%, 말레이계 14%, 인도계 8% 등이다. 언어는 헌법상 말레이어가 국어이지만, 중국어, 영어, 타밀어(Tamil) 등도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불교 53.3%, 이슬람교 15.3%, 기독교 12.7%, 힌두교 3.7% 등이다.
부존자원이 없기 때문에 국제무역과 해외투자에 크게 의존하는 개방경제체제를 운용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가는 경제부국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동남아시아지역의 금융중심지로 아시아달러시장이 개설되어 있어 경제성장에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주롱(Jurong)에는 대공업지대가 건설되어 있으며, 주요 공업부문으로는 식품 · 고무 · 섬유 · 목재공업 등이 발달되어 있다.
다민족국가로서의 균형을 위하여 종교에 따라 서로 다른 사회관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사회복지시책으로서 중앙복지연금제도를 설치하여 유사시에 대비한 일종의 강제저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한편, 사회보장제도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으나 1955년부터 봉급자의 노후보장, 지체불구로 인한 취업불능에 대비한 강제저축제도를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정부측에서 주택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여 현재 싱가포르 국민의 70% 이상이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2927억 달러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2888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내각책임제이며,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직선 89석, 지명 9석, 무선거구 3석)이다. 주요 정당은 인민행동당(PAP), 노동당(WP), 민주당(SDP) 등이다.
싱가포르는 1819년 당시 이 섬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인 래플즈(Raffles, T. S.)가 조호르왕국의 수석사법관과 영국 상관(商館) 설립협정을 체결한 뒤, 영국 동양무역의 거점이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의 점령 하에 들어간 일이 있으며, 1959년 영연방 내의 자치령이 되고, 1963년 말레이시아연방에 속하여 있다가, 인종적 · 경제적 대립으로 인하여 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연방에서 탈퇴하여 헌법을 제정하고 독립공화국이 되었다.
1959년 제1회 입법의회 선거에서 인민행동당(PAP)이 다수를 획득한 이래 리콴유(李光耀) 총리가 이끌면서 안정과 번영을 이룩하였다. 특히, 1968년부터 4년마다 실시된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은 거의 전의석을 독점하고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현재 제9대 대통령 타르만 샨무가라트남(Tharman Shanmugaratnam)은 2023년 9월 14일 취임하였으며, 그 아래 실권자 리콴유(Lee Kuan Yew) 전 초대 총리의 아들 리시엔룽(Lee H sien Loong) 제3대 총리가 2004년 8월 12일에 취임하여 이제껏 내각을 이끌어 왔으나, 2024년 5월 15일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웡(Lawrence Wong)이 제4대 총리로 취임하게 됨으로써 싱가포르는 20년 만에 새 지도자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우경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65년유엔에, 1970년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1967년에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결성하여 지역 내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1970년 설치하였던 통상대표부가 1972년 총영사관으로 승격되고, 1975년 8월 8일 대사관이 개설됨으로써 정식 외교관계가 양국 간에 수립되었으며, 2007년 현재 상주공관이 개설되어 있다.
싱가포르는 비동맹중립외교노선을 추구하고는 있지만, 대내적으로 강력한 반공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최근 국제추세에 부응하여 통상 · 경제협력 등 실리외교에 치중하는 관계로 우리나라와의 실질적인 관계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양국은 1967년 5월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72년 2월 항공 협정, 1979년 11월 이중과세방지 협정, 1981년 5월 항공 협정, 1982년 10월 사증면제협정, 1988년 1월 해상운송 협정, 1995년 8월 예술문화체육협력에 관한 협정, 1997년 3월 과학기술협력 협정, 1997년 6월 스포츠교류 협정, 2000년 11월 한 · 싱가포르중소기업협력 약정 및 표준협력 약정을 체결하고, 2005년 8월에는 하였다.
또한, 1979년 10월, 1986년 6월, 1988년 7월의 리콴유 총리의 공식방한과 1995년 8월고척동 총리의 방한, 그리고 1981년전두환 대통령과 1996년 2월의 김영삼 대통령의 싱가포르 공식방문, 2007년노무현 대통령의 방문 등 양국정상 상호방문은 이러한 한계를 최소화시켜 실질적인 우호협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한 · 싱가포르연례각료회담이 통상장관회담의 성격을 띠고 열리며, 또한 한 · 싱가포르민간경제협력위원회가 결성되어 양국 간 민간경제협력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싱가포르 정부는 1984년 1월 외국인 노동력 유입완화조처를 발표하여 취업직종에 제한받지 않는 전통적 노동력공급국 범주에 기존 말레이시아 외에 우리나라 · 대만 · 홍콩 · 마카오의 노동자를 포함시켜 우리나라의 인력진출을 쉽게 하였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지역에서 말레이시아 다음으로 큰 우리나라의 해외건설시장이다. 싱가포르에 우리나라의 건설업체가 처음 진출한 것은 1972년 2월로, 싱가포르건설공사에 최초로 진출한 업체는 신한기공건설로서 1972년 2월에 싱가포르정유공장 건설공사를 198만 달러에 수주하였다. 그 뒤 대림산업, 쌍용건설, 경남기업, 신화건설 등이 잇따라 진출하였고, 1980년대 이후에는 현대건설과 삼환기업 등이 진출하게 되었다.
1980년 이후에는 한국업체들의 대형공사수주가 크게 늘어나게 되었는데, 특히 쌍용건설과 현대건설은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대형공사들을 세계유수의 외국기업들과 경쟁하여 수주해내고, 또한 성공적으로 시공을 마침으로써 건설한국의 이미지를 동남아시아 지역에 심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를 들면, 쌍용건설이 수주하여 시공한 싱가포르 래플즈시티(Raffles City)는 동양 최대의 복합건물로서 오늘날 싱가포르의 상징적인 건물이 되고 있으며, 현대건설이 수주하여 시공한 마리나센터 건설공사, 싱가포르 폴라우테콩섬 매립공사, 창이공항 건설공사 등도 싱가포르의 명소를 만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싱가포르 건설시장은, ① 현지업체들도 상당한 시공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② 건설공사에 관련된 행정처리가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③ 공사수행에 따른 규제사항이 많고, ④ 노동력의 임금수준과 생산성이 높다는 점에서 소규모의 선진국시장으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 · 일본 등 선진국 건설시장으로의 진출확대가 주요 과제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 해외건설산업으로는 싱가포르 건설시장에서의 경험이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 싱가포르 수출액은 2015년 현재 150억 달러로 주종목은 석유제품, 선박해양구조물, 부품 등이고, 수입액은 79억 달러로 주종목은 반도체, 석유제품, 반도체 제조용장비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4명의 싱가포르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2015년 현재 은행, 종합무역상사 , 현대, 쌍용, 대한선주 등 많은 업체가 진출해 있고, 약 20,000명의 재외국민이 거주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68년 1월에 설치한 통상대표부가 1969년 12월 총영사관으로 승격하였고, 1975년 11월 8일 정식으로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2008년 현재 상주공관을 개설하고 있다. 양측은 1967년 5월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88년 1월 해상운송 협정, 2001년 8월 조림사업투자 협정을 체결하고, 2003년 4월 비료거래합의서, 2008년 5월 외교부간상호협력양해각서를 교환하였다.
북한의 대 싱가포르 수출액은 2008년 현재 3만 4000달러로 주종목은 가구 · 유기화학 · 섬유 등이고, 수입액은 120만 7000달러로 주종목은 연료 · 기계 · 담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