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관전서』 「앙엽기」 만(卍)에 "『법원주림(法苑珠林: 당나라 승려 도제가 지은 책)』에 부처가 처음 탄생한 일을 서술하기를 "앞가슴에 만(卍)자를 가지고 탄생하였다."고 하였다. 『능엄경요해(愣嚴經要解)』에는 "부처의 가슴에 만자가 있는 것은 길한 상서를 표시한 것으로 모든 덕을 모이게 하는 것이다."라 하였고, 또 명나라 위교(魏校)가 지은 『육서정온(六書精蘊)』을 인용하여 "만(卍)은 수의 끝이다. 옛사람이 두 개의 일(一)자를 취한 것은, 만물을 고동(鼓動)시키는 시작은 일(一)에서부터 일어나고 일로 돌아와 끝나며, 그 순환이 무궁하며 왕복이 서로 통하는 이치를 취한 것이다.”라 하였다.
또 『명시종(明詩綜)』(명나라의 3400여가의 시를 청나라 주이존(朱彝尊)이 찬집한 100권의 책)을 인용하여 “…만자는 길상의 뜻을 취한 것으로 복(福)자, 수(壽)자와 같이 쓰고 있다. 그러므로 무릇 기완(器玩)과 금수(錦繡)의 유(類)에는 모두 만자를 조각한다.” 고 해석하였다.
과거 모화사상에 젖은 조선시대의 상류층에서 만자문에 위와 같은 길상만덕의 소망이 내포되어 있다고 믿어 만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만자의 조형성은 다양한 문양을 전개할 수 있어 단독으로 또는 다채로운 문양으로 폭 넓게 서민 계층에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만(卍)자는 불교 사찰의 상징 외에도 길상만덕의 상서로움을 의미하므로, 조선시대에 이르면 불자가 아니더라도 가구나 능화판의 장식문양으로 많이 이용하였다. 특히 선비들의 공간인 사랑방에서 사용하는 서안이나 경상, 책장, 고비 등에 만자문을 투각하거나 음양각(陰陽刻) 등으로 시문하였다.
옆으로 반전(反轉)한 卍자는 영어로 Swastika라 하며 나치 독일의 상징으로 쓰였다.
현재까지도 벽지, 직물의 문양, 건물의 벽체나 담장, 도로에도 장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