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상간으로 칠중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지방관.
생애 및 활동사항
특히, 상간이었던 미제는 본숙(本宿), 모지(謀支) 등과 더불어 필부를 도와 힘써 싸웠지만 결국 적의 화살에 맞아 모두 장렬히 전사하였다. 당시 미제가 상간이라는 외위(外位)를 소지한 것으로 보아 칠중성이 위치한 적성 인근 지역에서 성장한 토착집단의 장(長)으로 여겨진다. 아마 그는 진흥왕이 한강 유역의 점령했을 때 신라에 귀순하고 대대로 지방 촌주(村主) 급의 신분을 유지하다가 칠중성전투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와 필부전(匹夫傳)에는 당시 치러진 칠중성전투의 결과에 대한 내용이 없다. 그러나 671년 문무왕이 당에 보낸 답서(答書)에 “건봉(乾封) 2년(667) 신라가 고구려의 칠중성을 공격해 점령했다”는 기사가 있어 660년에 일시 함락되었다가 667년 되찾은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파주 칠중성 지표조사보고서』(단국대 매장문화연구소·파주시, 2001)
- 「고구려 낭비성 위치에 대한 검토」(박종서,『국학연구』17, 2010)
- 「칠중성과 고랑포의 역사지리적 고찰」(이준선,『애산학보』31, 200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