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미상. 출신지는 경주로 추정된다.『삼국사기(三國史記)』의 이차돈 순교 기사의 말미에 김용행(金用行)에 관한 내용이 등장한다.『삼국사기』찬자(撰者)는 이차돈의 순교 기사가 김대문(金大問)의「계림잡전(鷄林雜傳)」에 의한 것으로 한나마(韓奈麻) 김용행이 찬한「아도화상비(我道和尙碑)」의 내용과 다르다는 주기를 첨부해놓았다. 그리고『삼국유사(三國遺事)』아도기라(阿道基羅)조에 찬자를 밝히지 않았지만「아도화상비」와 연관될 만한「아도본비(我道本碑)」의 내용이 상당 분량 인용되어 있다.
「아도화상비」의 찬자 김용행은 한나마의 관등을 가지고 있다. 한나마는 신라 17관등 중 제10위 대나마(大奈麻)의 이칭(異稱)으로 5∼6두품(頭品)과 진골(眞骨)만이 받을 수 있는 관등이다. 그런데 김용행이 신라 왕성인 김씨(金氏) 임을 주목하면 진골 귀족 출신의 인물로 여겨진다. 한편 신라 하대(下代)에 세워진 고승(高僧)들의 비명(碑銘)은 왕명을 받아 명성을 떨치던 문장가들에 의해 찬술(撰述)되었다. 이를 감안하면 김용행은 신라 중대(中代) 저명한 문장가로서 왕의 명령을 받아「아도화상비」를 찬(撰)했을 개연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