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 역사
  • 인물
  • 삼국
삼국시대 신라의 제21대 소지왕의 후궁.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여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날이군(捺已郡: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김병곤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제21대 소지왕의 후궁.

생애 및 활동사항

출신지는 날이군(捺已郡: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 아버지는 날이군 사람 파로(波路)이다.

소지왕 재위 말년에 왕이 날이군에 행차하였는데, 파로의 딸 벽화(碧花)가 16세의 나이로 국색(國色)이었다. 파로가 벽화를 자수(刺繡)로 꾸민 비단옷을 입혀 수레에 넣어 색색(色色)의 천으로 덮어 왕에게 바치었는데, 왕이 음식으로 여겨 받았다가 열어보니 어린 여자가 있어 이상히 여기어 물리쳤다. 왕이 환궁한 뒤로 벽화의 아름다움이 생각나 세 차례나 미복(微服)으로 갈아입고 잠행(潛行)하여 벽화와 정을 나누었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고타군(古陀郡: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의 할멈이 소지왕에게 충고하자 이를 부끄럽게 여긴 소지왕은 더 이상 날이군에 잠행하지 않았다. 대신 남모르게 벽화를 맞이하여 별궁(別宮)에 두고 정을 통하여, 벽화는 이후 소지왕의 아들을 낳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벽화를 맞이한 직후 소지왕은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어 갈문왕(葛文王)이었던 지증왕(智證王)이 즉위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소지왕대 북방경영(北方經營)에 따른 신라 조정의 내부 갈등을 상정하거나 왕위계승에 일종의 정변(政變)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신라 소지왕대 대고구려관계와 정치변동」(장창은,『사학연구』78, 2005)

  • - 「영일냉수리비에 보이는 지도로갈문왕에 대한 몇 가지 문제」(이희관,『한국학보』60, 199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