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

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신라의 제21대 소지왕의 후궁.
인물/전통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날이군(捺已郡: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
목차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제21대 소지왕의 후궁.
생애 및 활동사항

출신지는 날이군(捺已郡: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 아버지는 날이군 사람 파로(波路)이다.

소지왕 재위 말년에 왕이 날이군에 행차하였는데, 파로의 딸 벽화(碧花)가 16세의 나이로 국색(國色)이었다. 파로가 벽화를 자수(刺繡)로 꾸민 비단옷을 입혀 수레에 넣어 색색(色色)의 천으로 덮어 왕에게 바치었는데, 왕이 음식으로 여겨 받았다가 열어보니 어린 여자가 있어 이상히 여기어 물리쳤다. 왕이 환궁한 뒤로 벽화의 아름다움이 생각나 세 차례나 미복(微服)으로 갈아입고 잠행(潛行)하여 벽화와 정을 나누었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고타군(古陀郡: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의 할멈이 소지왕에게 충고하자 이를 부끄럽게 여긴 소지왕은 더 이상 날이군에 잠행하지 않았다. 대신 남모르게 벽화를 맞이하여 별궁(別宮)에 두고 정을 통하여, 벽화는 이후 소지왕의 아들을 낳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벽화를 맞이한 직후 소지왕은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어 갈문왕(葛文王)이었던 지증왕(智證王)이 즉위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소지왕대 북방경영(北方經營)에 따른 신라 조정의 내부 갈등을 상정하거나 왕위계승에 일종의 정변(政變)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 소지왕대 대고구려관계와 정치변동」(장창은,『사학연구』78, 2005)
「영일냉수리비에 보이는 지도로갈문왕에 대한 몇 가지 문제」(이희관,『한국학보』6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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