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思眞)은 신라 중고기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제1관등인 서불한(舒弗邯, 일명 舒發翰)에 임명된 인물이다. 그가 맡았던 서불한은 중고기에 완성된 신라 17관등 중 제1위인 이벌찬(伊伐湌)의 이칭(異稱)으로 관직은 아니다. 다만『삼국사기』신라본기에 서불한의 임명 기사는 주로 상대(上代)에 나오며, ‘겸지내외병마사(兼知內外兵馬事)’ 또는 ‘참국정(叅國政)’ 혹은 ‘위이군국지사(委以軍國之事)’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므로 상대(上代)의 서불한은 일종의 관직으로 기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법흥왕(法興王)대 ‘총지국사(摠知國事)’ 내지 ‘위이국사(委以國事)’를 수행하는 상대등(上大等)이 설치되면서 서불한의 직무를 대신하였다.
서불한 임명 기사는 선덕여왕대 사진에 대한 임명을 끝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당시 기록에서 상대등과 서불한이 공존하고 있다. 진평왕(眞平王)의 장녀였던 덕만(德曼)은 전례 없는 최초의 여왕으로 즉위하며 상당한 정치적 반발을 이겨내야만 하였다. 그런 만큼 선덕여왕은 즉위 직후부터 많은 인물들을 중용하여 정치적 안정을 도모할 수 밖에 없었다. 632년(선덕여왕 즉위년) 2월에 대신 을제(乙祭)로 하여금 국정을 총괄케 하였고, 636년(선덕여왕 5) 정월에는 이찬(伊湌) 수품(水品)을 상대등으로 삼았으며, 이듬해인 637년(선덕여왕 6) 정월에는 이찬 사진을 서불한으로 임명하였다. 이러한 선덕여왕의 정치 운영 모습을 보면, 서불한에 임명되었던 사진은 선덕여왕의 측근으로서 상대등 수품과 더불어 국정 운영에 적극 참여하였던 인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