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당과 군사동맹(軍事同盟)을 바탕으로 660년(무열왕 7) 7월 29일 웅진성(熊津城)에서 백제 의자왕(義慈王)의 항복을 받고 백제 통합을 이룩하였다. 같은 해 9월 3일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은 백제왕과 왕족 및 신료 93인 그리고 인민 1만 2천인을 거느리고 당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백제의 남은 지방 성주와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기병(起兵)하여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하여 백제 영토 내에서 잔류한 당군(唐軍)과 많은 전투가 벌어졌다.
이에 신라 무열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백제부흥운동 진압에 나섰다. 신라군은 같은 해 11월 5일 부여강(夫餘江)을 건너 왕흥사잠성(王興寺岑城)을 공격하였다. 이틀 후인 11월 7일 성을 함락하고 약 7백인의 목을 베었다. 무열왕은 전투가 끝나고 돌아와 군공을 포상하였는데, 전사한 졸선복(卒宣服)과 두질(豆迭)에게 특진(特進)을 내리고 설유(屑儒)·유사지(儒史知)·미지활(未知活)·보홍이(寶弘伊) 등 네 명에게는 관직을 주되 차등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설유가 무열왕의 친정(親征)에 참가해서 군공을 세운 것으로 보아 왕경인(王京人) 출신으로 판단된다. 그가 관직을 받았던 것을 통해서 신라 왕경의 군인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그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생애나 업적은 자세히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