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남해안의 도서지역이나 해안가에서 추석 때 돌을 던져 나무를 맞추는 놀이로서, 석전(石箭)이라고도 한다.
석사놀이는 돌을 던져 목표물을 맞히는 방식이므로, 석전(石戰)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서는 "매년 정초에 군중들이 패수(浿水)가로 모여서 노는데 물과 돌을 서로 끼얹고 던지며 밀고 밀리기를 두세 번 하다가 그친다.”는 『당서(唐書)』「고구려전(高句麗傳)」을 인용하여, 석전(石戰)의 연원을 밝혔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공민왕(恭愍王) 23년(1374)에 석전놀이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명종실록』에 따르면, 왜구의 침입에 맞서 석전꾼 100명을 뽑아 방어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렇듯 석전이 전쟁을 본 딴 모의전쟁의 성격을 가진데 반해, 석사놀이는 목표물을 맞히는 경기의 방식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석사놀이는 마을 간 일정한 참가자를 정해서 미리 지급한 돌로 세워둔 나무를 향해 던지게 된다. 나무는 2~3m정도의 높이이고, 직경 15㎝ 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또한 나무의 중간부분은 껍질을 벗겨 표식을 삼는다. 이 때 참가자는 15m정도 떨어진 곳에서 목표점을 맞춰야 점수로 인정받는다. 최종적으로는 마을에서 뽑힌 참가자들이 목표점을 맞춘 숫자를 더하게 되는데, 숫자가 많은 쪽이 승리하게 된다. 마을 풍물패는 악기를 연주하며, 자기 마을 참가자들을 응원하게 된다.
돌팔매질은 흔히 어린아이 때부터 즐겨하던 놀이의 하나이다. 돌팔매질의 종류는 다양해서 싸움이나 대상을 맞추는 경우도 있지만, 물가에서 돌을 던지면서 수면 위에 떠오르는 횟수를 세면서 노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석사놀이는 석전, 또는 돌팔매질의 일종으로 무술을 단련하는 놀이기도 하다. 석전은 고구려에서는 정초에 두 패로 나누어 승부를 내는 놀이였으나, 고려시대에는 단오날에 주로 성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