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상들은 지장보살상 연화 대좌 하단의 묵서명 및 시왕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하여 1706년(숙종 32)에 금문(金文), 청윤(淸允) 등이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009년 6월 24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칠장사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지장보살상은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하품중생인을 결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지장보살상과 손의 좌우가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얼굴에서는 콧등이 평형하게 되어 있다거나, 귀가 유난히 강조된 점이 특징이다. 가슴 부위에서는 내의의 띠매듭이 보이고, 그 위로 옷자락이 규칙적으로 접혀있어 시대적 징후를 보여준다.
시왕상은 의좌상으로, 제1에서 제10 왕까지를 지장보살 좌우로 번갈아가며 봉안하였다. 대체로 제2 초강대왕처럼 원류관을 착용하고 두 손으로 홀을 쥔 모습이지만, 제10 오도전륜대왕처럼 반가좌를 한다든가 제8 변성대왕처럼 한 손을 치켜 올리든가 하여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다.
입상의 판관과 귀왕은 전반적으로 시왕상의 양식을 닮았으며, 사자상은 기를 들고 두 발을 벌려 당당히 서있다. 금강역사는 매우 해학적인 얼굴이 인상적이고 위협적으로 큰 칼을 휘두르는 모습도 주목된다. 동자상은 여덟 구가 남아있는데, 각각 개성이 뚜렷하다. 일부는 해태 · 봉황 등 상상 속의 동물을 데리고 놀고 있으며 어떤 동자는 채집을 하러 나왔거나 물가에서 연밥을 따는 등 풍속화를 보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불사에서 화주였던 사간(思侃)은 이후 1726년(영조 2)에 현재의 명부전을 건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지장보살상의 복장에서는 1634년(인조 12) 본과 1677년(숙종 3) 본의 두 권의 『묘법연화경』권1 및 조선 후기의 의식집이 발견되었다.
같은 시기의 지장보살상에 비해 수인이 반대이고 권속에 속하는 동자상들이 일괄로 갖추어져 있으며, 그 표현이 매우 생동감이 있어 조선 후기 조각사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괄 불상들은 불상과 건축물의 조성에 있어서 선후관계, 17세기와 18세기 조각 양식을 이어주는 기년명을 가진 작품이라는 점, 조각승이 기록되어 있어 그 유파의 특징과 변천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