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익이 서거하기 4년 전인 1630년(인조 8) 11월에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친필로 쓴 유언장이다. 그러나 재산 상속에 관한 언급은 일체 없다.
본 유서는 이원익이 아들 이의전(李義傳)과 손자 이수약(李守約) · 이수기(李守紀) · 이수강(李守綱) 그리고 서자(庶子)인 이효전(李孝傳)과 이제전(李悌傳)에게 친필로 써 준 유언이다. 그 내용은 본인의 사후에 자손들이 지켜야할 사항을 6개 조로 나누어 적었다.
그 내용은 ① 후장(厚葬)하지 말 것, ② 여묘(廬墓)살이는 미속(美俗)이니 힘써 지킬 것, ③ 초상에서 상제(祥祭) · 담제(禫祭)로부터 기제(忌祭)까지 무당과 불도의 예를 따르지 말고 검소하게 지낼 것, ④ 풍수지리설에 현혹되지 말고 일가의 묘소는 금천(衿川) 오리동(梧里洞)으로 모아 관리할 것, ⑤ 시제(時祭)와 속절(俗節)의 묘제(墓祭) 제물은 10여 접시로 간소하게 할 것, ⑥ 고조모 이하 직계 이외의 방친은 각 위에 배전(拜奠)만 할 것이며, 말미에 얼파(孼派, 서족)는 적가(嫡家)의 분부를 따를 뿐,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추기되어 있다.
유서의 말미에는 아들 이의전과 손자 이수약 · 이수기 · 이수강 등 유서의 수신자들을 적었는데, 서자들에게도 알리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이효전과 이제전에게도 역시 1부씩 써 준다는 사실을 세자(細字)로 추기하였다. 아울러 서자들은 적자손들에게 순종해야 할 도리도 추가하였다.
이 유서의 내용은 본인 사후의 장례와 제례 및 묘지 관리 등에 관하여 훈계한 내용이 주가 되고 재산 상속 등에 관한 내용은 일체 없으며, 모든 의례에 무당과 불교 의식, 풍수지리설 등을 배격하고 유교 의식에 따라 검소하게 행할 것을 강조한 점이 주목된다. 또 묘지를 한 곳에 촘촘하게 쓰고 일가의 묘소를 공동묘지처럼 관리토록 한 것이 특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