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과 개금 중수 발원문을 통해 1659년(효종 10) 4월에 조성되었고, 1903년(광무 7) 11월에 개금 중수가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2011년 12월 20일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다보사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지장보살좌상 조성 발원문에 등장하는 조각승인 화원은 지견(智堅), 신관(信寛), 삼우(三愚), 성보(性寶), 성안(性安, 性眼), 행근(行斤, 幸根), 성화(性花), 심일(心一), 삼인(三認, 三忍) 등 모두 9인으로, 17세기 중후반에 전라 · 경상 · 충청도에서 활약한 조각승들이다.
통견에 하품중생인을 결한 높이 96㎝의 지장보살상은 얼굴은 같은 시기 불상들보다 아담한 크기의 비례를 보이고, 손바닥과 손가락은 유난히 길고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는 등신상에 가까운 크기에다 얼굴까지 몸에 비해 작게 만들어 더욱 훤칠한 느낌이 든다.
시왕상 역시 160㎝ 내외의 큰 크기이며, 갸름한 얼굴에 눈꼬리가 많이 치켜올라간 표정이 특징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에서 한 다리는 상의가 덮고 있고, 다른 한쪽은 무릎 아래의 하의가 드러난 상태로 표현하여 좌우 비대칭을 이룬 상이 많으며, 반가좌 · 윤왕좌 등의 독특한 자세, 혹은 옆의 시왕의 판결문을 엿보는 듯한 자세 등에서 매우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귀왕과 판관, 사자, 인왕상 중의 어떤 상은 마치 중심을 잃은 듯이 보일 정도로 체중을 한쪽에 실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판관의 커다란 복두, 상체를 드러내지 않고 금강저도 들지 않은 맨손의 인왕, 판결을 받아 적는 듯한 사자상의 도상 등은 일반적인 명부전 도상과는 다른 개성이 엿보인다.
지장보살상은 마치 예불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상체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고 있어 미묘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시왕상은 근엄한 느낌보다는 재판으로 인해 분주한 재판정의 모습을 강조한 듯 보여 특별하다. 아울러 권속들은 파격적인 자세를 통해 명부전을 매우 역동적인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17세기 중후반에 활약한 지견, 신관 일파의 조각 양식을 살펴볼 수 있으며, 특히 신관은 17세기 전반기에 활약한 수연(守衍) 유파로 추정되어 그 양식적 연관성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