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 조성기에 의하면, 목조 지장상은 1664년(현종 5)에 고흥 능가사(楞伽寺)에서 천일(天日) 대선사 및 창건주 정현(正玄)이 화사가 되어 시왕상과 함께 조성한 불상으로, 수화승 녹원(鹿苑) 외 17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여 제작한 것이다. 2012년 3월 22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지장암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지장보살상은 민머리의 대형 승려형이며, 통견에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결하고 있다. 얼굴과 상체는 원통형으로 밋밋한 느낌을 주고, 목에 삼도가 표현되었으며, 양쪽 옷깃 사이로 드러난 가슴은 아무런 양감이 없이 평면적이다. 그럼에도 코, 귀, 손 등은 크고 섬세하게 강조된 편이다. 결가부좌한 무릎은 높고 옷자락도 생략적이지만 교차한 다리 사이로 굵은 부채꼴 옷자락만 강조되었다.
복장 유물로는 오색실로 묶은 원통형 후령통이 다라니 및 노란색 보자기에 싸여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5방 뭉치 및 동판, 수정통, 붉은 천 등이 납입되어 있었다. 그 외 목판본 『묘법연화경』과 붉은색으로 간행된 목판본 『여래전신사리보협진언(如來全身舍利寶篋眞言)』 다라니 13뭉치가 수습되었다.
1742년(영조 18)의 중수 발원문에 의하면, 당대 최고의 불화승 의겸 등이 개금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86년에 개금된 것이다.
이 상의 극도로 관념적인 인체 표현은 1634년(인조 12) 수연(守衍) 작 익산 숭림사(崇林寺) 지장보살상 및 1651년(효종 2) 무염(無染) 작 신흥사 지장보살상과도 유사하며, 수인의 경우는 1651년(효종 2) 무염 작 신흥사 명부전 지장보살상 및 1667년(현종 8) 운혜작 화순 쌍봉사(雙峰寺) 지장보살상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착의법은 같은 녹원이 제작한 해인사 명부전 지장시왕상(1673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불상은 1644년(인조 22) 조성기와 1742년(영조 18) 중수기가 남아 있어 발원자는 물론 조성시기와 조각승, 봉안 사찰 및 중수 사실 등을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