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 원문에 의하면, 1784년(정조 8) 12월에 경주 기림사(祇林寺)에서 259위의 불상이 제작되어 이듬해 정월 24일에 점안을 마친 뒤, 26일 육로로 출발하여 2월 4일에 모두 22차에 걸쳐 옮겨졌고 여기에 원래 절에 있던 741위의 불상을 2월 10일부터 24일까지 중수한 후 합하여 천불상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불상은 그 중의 한 구이다. 2012년 3월 22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지장암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당시 기림사에서 어느 절로 옮겼는지는 원문에 나와 있지 않지만, 직지사 천불상에서 나온 조성 원문과 내용이 동일한 것을 보면 직지사로 옮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상 복장으로 납입된 조성 원문에는 시주질과 함께 조각승[良工]으로서 수화승 유성(有誠)을 비롯하여 설훈(雪訓), 지언(志言), 봉현(封玄) 등 총 40명의 불화승과 조각승이 천불상의 일부를 새로 제작하고 나머지를 중수하는 일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수화승 유성은 18세기 후반에 경주 불국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불화승으로 경상도와 충청도 지역 사찰들의 불화를 제작하고 불상 개금에 참여하였으며, 설훈 역시 불화승으로서 경상도와 경기도의 여러 불화와 불상들을 개금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불상은 경주 불석으로 제작되었는데, 기림사가 당시 경주 불석으로 불상을 제작하던 중심 공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직지사에서 1784년(정조 8)에 특별히 기림사에 의뢰하여 제작한 것도 기존에 있던 700여위의 불상이 경주 불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상은 유희좌로 앉아있는 것이 특징이며, 다소 자유분방한 좌세(坐勢)에 부응하듯 옷자락도 자연스럽게 물결치듯이 몸을 감싸고 있다. 왼손은 세운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은 배 앞에서 손바닥에 보주를 얹고 있다. 머리 정상부에는 정상 계주가 원통형으로 표현되었다.
직지사에 전하고 있는 같은 계통의 천불상과 달리 개금을 하여 느낌은 다르지만, 형태적으로는 경주 불석의 특징이 부드러운 손바닥 · 발바닥 등의 묘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