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창원 퇴촌리 순흥안씨 문중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개설
서지적 사항
| 표제 | 크기 | 분량 | 비고 |
|---|---|---|---|
| 순흥안씨종안(順興安氏宗案) | 29.0×23.7cm | 불분권1책, 12장 | 사주단변(四周單邊), 유계(有界), 8행(行) 14자(字), 사침선장(四針線裝) |
| 순흥안씨선사(順興安氏先事) | 30.8×18.9cm | 4권 2책, 212장 | 사주단변, 유계, 10행 23자, 사침선장 |
| 취정록(就正錄) | 32.5×18.5cm | 불분권1책, 74장 | 성재문인(性齋門人) 정재건(鄭在建, 1826∼?)의 종사기(從師記) |
| 회산부선생안(檜山府先生案) | 24.9×19.1cm | 불분권1책, 16장 | 회산읍관안(檜山邑官案), 오침선장(五針線裝), 퇴우(退愚) 가장(家藏) |
| 퇴은유사(退隱遺事) | 28.4×20.1cm | 불분권1책, 31장 | 사주단변, 무계(無界), 10행 20자, 오침선장 |
| 소헌유사(嘯軒遺事) | 28.4×20.1cm | 불분권1책, 52장 | 사주단변, 무계, 10행 20자, 오침선장 |
| 퇴우유고(退愚遺稿) | 27.6×20.0cm | 4권 2책, 152장 | 사주단변, 무계, 10행 20자, 오침선장 |
| 〈표1〉 | |||
| 표제 | 장정 시기 | 크기 | 편수(篇數) | 비고 |
|---|---|---|---|---|
| 찰축(札軸) | 신축(辛丑) 7월 | 44.9×31.7cm | 44 | 내지(內紙) 39장. 성재(惺齋) 안몽백(安夢伯, 1762~1838) 가숙장본(家塾藏本) |
| 〈표 2〉 | ||||
내용
성책류는 순흥안씨 종안(宗案) 1책과 선사(先事) 2책, 취정록(就正錄) · 회산부선생안(檜山府先生案) 각 1책 『퇴은유사(退隱遺事)』 · 『소헌유사(嘯軒遺事)』 · 『퇴우유고(退愚遺稿)』 등 문집 초고 4책, 간찰축(簡札軸) 1책이다.
의의와 평가
『취정록』은 창원 완암(完巖)에 거주하였던 정재건(鄭在建, 1826~?)이란 인물이, 김해부사로 부임해온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하에 들어가서, 보고 듣고 묻고 배웠던 여러 가지 사실을 기록해 둔 것으로, 1865년(고종 2)과 1866년(고종 3) 사이의 성재 문인들의 동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회산부선생안』은 역대 창원부사들의 성명 및 부임과 이임 사항을 기록해 둔 것이다. 지금 원본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 자료는 사본이기는 하지만 창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집 초고는 퇴은(退隱) 안두철(安斗喆, 1809~1876)의 『퇴은유사』 1책과, 그 아들 소헌(嘯軒) 안정석(安貞錫, 1836~1911)의 『소헌유사』 1책 및 소헌의 손자 퇴우(退愚) 안지현(安祉鉉, 1887~1922)의 『퇴우유고』 2책 등이다. 이들 이외에도 이 가문에서는 대대로 문한이 있었으나 특히 이 3인의 경우 문집 초고가 남아 있으므로, 이들 초고는 이 집안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창원을 중심으로 하는 인근 지역 유림과의 교유 내용을 연구한다면, 앞으로 이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간찰축 또한 함안에 세거하던 순흥안씨가 17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 인물과 어떻게 교유하고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자료로, 지역사 연구에 있어서는 더 없이 좋은 자료다.
참고문헌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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