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윤선도가 조성한 원림.
개설
내용
윤선도는 1671년(현종 12) 완도 보길도 낙서재에서 85세로 사망하여 금쇄동 산 중 묘소에 안장되었다. 묘에는 허목이 지은 신도비와 제각인 추원당이 갖추어져 있다. 해남 윤선도 유적은 금쇄동원림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남읍에서 약 8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해발 270m의 산 정상에 있다. 해남 녹우당에서 멀리 바라보이며, 산 정상에서도 아스라이 덕음산 밑에 자리한 녹우당이 보인다.
이 유적은 금쇄동과 수정동으로 나뉘어지는데 현산면 구시리 진입도로에서 서북쪽으로 2.5km 거리의 산 정상이 금쇄동이고, 수정동은 금쇄동으로 오르는 길 입구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금쇄동은 15만 평방미터의 넓은 면적으로 이 일대에 현산고성(懸山固城)이 있다. 현산고성은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동문, 서문, 북문 등 3곳의 문지, 수구의 성곽시설과 망루지, 건물지, 제방 등의 성내시설이 남아 있다.
금쇄동이란 명칭은 윤선도가 금쇄석궤(金鎖石櫃 : 황금의 자물쇠로 잠긴 궤)를 얻는 꿈을 꾸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 꿈과 부합되는 이곳을 찾아서 그 이름을 금쇄동이라 지었다고 한다. 그는 진입로에서 금쇄동으로 오르는 산에 길이 나있지 않고 나무와 바위틈 사이로 오르면서 명소 22곳에 이름을 붙이고, 명칭의 연유를 『금쇄동기』에 서술하였는데,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그 장소에서 떠오른 상념, 선영에 대한 추모, 마음의 안정과 은둔 등을 표현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사적 제2권(증보판)』(문화재청, 2010)
- 국가유산청(www.khs.go.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