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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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단체
1970년대 원풍모방 · 동일방직 · 청계피복 등 해고노동자들이 결성한 최초의 공개적 노동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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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70년대 원풍모방 · 동일방직 · 청계피복 등 해고노동자들이 결성한 최초의 공개적 노동운동단체.
내용

1980년 5월 17일 이후 ‘정화조치’를 명목으로 노동운동에 불어닥친 탄압으로 원풍모방을 비롯한 모든 민주노조들은 해체되거나 어용화 되고, 당시 핵심간부들은 삼청교육대에 보내지거나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에도 ‘블랙리스트’ 명단이 작성되어 취업이 봉쇄됐다.

이 ‘블랙리스트’는 1978년 동일방직투쟁 당시 섬유노조 위원장 김영태가 작성 배포한 것으로부터 유래했는데, 신군부는 1980년 이후 정화노치와 해고노동자 1천여 명의 명단을 작성 배포했다. 이 문제는 1980년 정화조치 때 카톨릭노동청년회 회원이라는 이유로 태창메리야스에서 해고된 여성노동자 6명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다시 해고되면서 발생했다. 그리고 1983년 10월 인천 삼익가구, 태평특수섬유, 신도실업 여성노동자 4명도 블랙리스트를 계기로 해고되면서, 이를 계기로 노동계에서는 ‘블랙리스트 철폐운동’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 운동이 한계가 부딪치며 1984년 새로운 노동운동을 모색하는 가운데 정세의 변화에 따라 노동자들의 활동공간이 넓어지자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노동운동을 지원할 조직체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1984년 3월 10일 서울 홍제동성당에서 2천여 명의 노동자, 학생, 시민들이 모여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이하 노협)’를 발족시키고 운영위원장으로 방용석을 선출했다.

노협은 창립선언문에서 “이제 우리들은 노동자의 생존 자체를 압살하는 오늘의 현실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이 땅의 8백만 노동자를 옹호 대변하기 위하여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의 결성을 엄숙히 선언한다. … 유신독재의 어두운 시대에 민주 노동조합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다 권력의 잔인한 탄압에 의해 희생된 당사자로서 비조직적이고 고립분산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운동의 주체성·통일성·연대성을 드높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노협은 사무실을 열고 기관지 ‘민주노동’을 발간하고, 교육, 선전, 상담, 법정투쟁 지원 등과 청계피복노조복구투쟁 및 노동법개정운동 등을 전개했다. 또한 민통련, 민청련 등과 연대활동을 펼치고 1985년 2월에는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를 결성했다. 이후 1989년 1월 22일 한국민주노동자연맹으로 개편됐다.

참고문헌

『연표로 보는 한국민주화운동』(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선인, 2006)
『한국근현대사사전』(가람기획, 2005)
집필자
노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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