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탁독립투쟁위원회는 1947년 초 미소공동위원회의 재개 움직임에 따라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다시 가열되는 가운데 구성되었다.
신탁통치 반대운동의 재연을 계기로 김구가 신탁통치 반대운동의 조직적 통합을 제안하였고, 비상국민회의와 민족통일총본부,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단일한 편성이 모색되었다. 그러나 관계 단체들 간에 이견이 표출되어 조직통합은 일단 이루어지 않았고, 신탁통치 반대를 공동 목표로 활동하는 연대 단위로서 반탁독립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947년 1월 21일 김구와 조소앙, 김준연 등 9명이 협의하여 각 사회단체가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함께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반탁독립투쟁위원회를 설치키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 결성은 24일 경교장에서 42개 단체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최고 고문으로 이승만, 위원장으로 김구, 부위원장으로 조성환, 조소앙, 김성수를 추대하였다.
1947년 1월 27일 제1차 실천위원회를 개최하였고, 29일에는 제2차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하여 각 우익단체들에게 ‘반탁독립투쟁에 관한 건’을 보냈다. 2월 3일에는 연석회의를 열고 ‘반탁독립투쟁 국민대회’의 개최를 결정하였다. 그 결과로 2월 14일 서울 천도교 대강당에서 김구와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 및 방청객 2천여 명이 참석한 국민대회가 열렸다. 국민대회는 “과도적 독립정부”를 서울에 수립할 것과 아울러 “신탁통치 내용의 여하와 기간의 장단을 불문하고 결사반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반탁독립투쟁위원회가 전개한 일련의 활동은 1947년 7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양측이 반탁독립투쟁위원회 가입 단체들을 협의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둘러싸고 대립·갈등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