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4월 명성그룹 회장과 상업은행 서울 혜화동 지점 대리는 부도 직전에 있던 명성관광이 발행한 어음의 교환자금 부족액에 대한 연장결제 문제로 만나면서 친분을 쌓았다. 이후 4년여 동안 상업은행 대리는사채중개인을 통해 예금 형식을 빈 사채를 모집하고, 그 가운데 일부를 인출해 별도로 개설한 계좌에 입금시킨 후 명성그룹 회장에게 융통해 주었다.
명성그룹 회장은 이렇게 조달된 자금을 사용해 65만 평 규모의 골프장 명성컨트리클럽을 개장·운영하기 시작했고, 이후 금강개발, 명성콘도미니엄, 남태평양레저타운을 비롯해 방대한 계열사들을 포괄한 국내 최초·최대 관광·레저전문그룹을 경영했다.
그러나 국세청의 명성그룹 세무조사에서 수기(受記)통장을 이용한 변칙적 사채 조달이 발각되면서 명성그룹 회장과 상업은행 대리는 1983년 8월 17일 검찰에 의해 구속되어 수사를 받게 되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상업은행 대리는1000여 명이 넘는 전주(錢主)들을 상대로 사채자금 1066억 원을 조성했는데, 이 가운데 544억 원은 사채업자에게 주는 선이자로 운용했으며, 512억 원은 명성그룹 회장에게 주어 명성그룹 기업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수기통장의 활용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은행들의 업무가 완전히 전산화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되어 있는 경우에도 정전에 대비해 수기통장을 병용하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업은행 대리는 예를 들어 사채 중개인에게서 예고된 한 예금인(사채 전주)이 1억 원을 맡기면, 수기통장에 1억 원을 기재해 내주고 원장에는 100만 원만을 기재했다. 그리고 차액 9900만 원은 자신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계좌에 입금시켰다. 또한 거래신청서나 이자전표의 인감 란에 예금주의 인장을 받아 날인하면서 인근에 둔 백지 예금청구서나 지급전표에도 몰래 미리 찍어 놓고, 이후 이를 필요할 때 인출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는 퇴근시간이 되면 조성된 금액을 파악하고 사채의 실세 이자와 은행의 정규 이자 간의 차액을 보전해주는 차원에서 사채 중개인에게 선이자를 지급했다. 그리고 조성한 사채자금을 명성그룹 회장측에게 건넬 때에는 명성그룹 어음의 결제를 위해 명성그룹 계열사 법인 계좌에 입금하는 방법을 썼다.
1984년 8월 14일 대법원은 명성그룹 회장에게 징역 15년, 벌금 79억 3000만 원을, 상업은행 대리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고, 그 외에 이들에게 협조한 전 행원과 전 교통부 장관, 전 건설부 국토계획국장 등에게도 형사처벌을 내렸다. 이들의 죄명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뇌물 수수 및 공여, 조세범처벌법 위반 등이었다.
명성그룹사건이 세인의 주목을 크게 받은 것은 자금의 모집 방법이나 규모 뿐 아니라, 이른바 고위층에 의한 표적 수사설 등이 퍼져나간 것도 이유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