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응택은 1902년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중 북한 인민군에게 생포되어 이후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로 극우반공단체인 대동단, 백의사의 지도자이다. 1931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였고, 이후 파주군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중국 상해로 건너가 1934년 장개석의 지도 아래 있던 남경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특별반에 입교하였다.
졸업 후 1935년 6월 중순 신한독립당 군사부 외교부 부장이 되었고, 이후 중국 국민당정부의 반공정치공작대인 남의사에서 활동을 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 관동군 헌병대에 체포되어 고문을 심하게 당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시력을 점차 상실해갔다.
1944년 8월 평양에서 극우성향의 정치조직 대동단을 결성하였다. 대동단은 제2독립운동의 차원에서 반공활동을 할 것을 결의하였고, 그 일환으로 1945년 9월 조선공산당 평안남도 도당위원장 현준혁을 암살하였는데, 염응택은 동사건의 혐의로 소련 군정에 연행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45년 11월 백의사를 조직하였고, 백의사의 성원들을 훈련시켜 북한지역과 남한지역 모두에서 극우반공정보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피난을 가지 않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북한 인민군에게 생포되었는데,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해방 후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고 신탁통치와 임시정부 수립의 방향을 둘러싼 제반 정치세력들 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표출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북측의 김일성·최용건·김책·강양욱 등에 대한 암살 기도와 남측의 장덕수·여운형 등의 암살이 바로 염응택이 지도한 백의사 요원들에 의해 행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