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발발 소식이 미주로 확산된 후, 미주한인사회는 독립의 기운이 뜨겁게 타 올라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선전외교활동과 독립의연금 모금활동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 김정진(이후 ‘김호’로 변경), 변준호, 최능진, 이초, 이용선, 장병훈, 한장호 등 23명의 재미한인 청년들이 1919년 5월 31일 「청년혈성단취지서」를 발표하고 조직한 단체이다.
「청년혈성단취지서」에 나타난 설립 취지를 보면, 사업과 정신 등 모든 면에서 오직 한 가지 목적인 독립의 대사업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데 두었다. 이러한 설립 취지에 맹약한 23명의 발기자는 새로 설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인국민회를 위해 혈성으로 헌신할 것과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사상, 학술상, 또는 기예를 배우며, 정의와 인도를 무시하는 독립운동의 모든 해독물을 박멸하는 것을 활동 방침으로 삼았다. 이처럼 한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물질과 정성을 다 바쳐 헌신하겠다는 열혈 애국청년들의 결의가 청년혈성단을 탄생시켰다.
1919년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버클리학생양성소에서 발기인대표회를 개최하고 내부 규칙과 대외활동의 방침을 제정하였다. 아울러 조직도 구성하여 단장 황사선, 서기 신윤국을 선임하였다.
다뉴바에서 열린 한인대회(1919.8.14∼17)에서 8월 17일 청년혈성단대회를 별도로 개최한 후, 단의 설립 목적과 취지를 설명하고 ‘한국혁명’이라는 연극을 공연하며 독립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청년혈성단에 참여한 이초와 이용선은 단의 설립 취지에 따라 군사기술을 배우기로 작정하고, 1919년 8월 25일 레드우드비행학교에 입학하였고, 뒤이어 한장호도 같은 학교에 입하였다. 이들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으로 선임된 노백린을 만나 윌로스의 비행학교(‘한인비행가양성소’)에 교관으로 활동하며 비행학교의 운영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독립운동을 위해 북미지역 한인 청년들이 처음으로 결집한 단체로, 윌로스 한인비행학교의 설립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19년 8월 이후 청년혈성단의 활동상은 나타나고 있지 않는데, 이는 단에 참여했던 주요 단원들이 각자의 임무를 갖고 타지로 흩어지면서 단의 존재가 유야무야된 때문으로 보인다.
북미지역 열혈 애국청년들의 활동으로 대한인국민회를 비롯한 미주한인사회에 독립운동의 열기를 크게 고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