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17년 1월 20일 설립한 북미실업주식회사(사장 임준기)에 안창호, 송종익, 맹종호, 임준기, 김사원 등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흥사단 단원이 아니었으나, 임준기와 송종익과 함께 북미실업주식회사의 이사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부터 22년까지 대한인국민회 다뉴바지방회의 재무로 활동하면서 경신참변(1920.10)으로 희생당한 간도의 한인들을 돕는데 워싱턴군축회의(1921.11.12∼1922.2.6)를 대비한 특별외교비 의연금 수합에 앞장섰다.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개조를 둘러싸고 국민대표회 결성 소식이 미주에 들려오자 1921년 11월 25일 이영수, 조울림, 송헌주, 한시대, 임성택 등과 함께 다뉴바 국민대표회기성회(회장 이영수)를 조직하고 국민대표회의 개최를 지원하였다.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가 1922년 들어 재정문제로 곤란을 당하자 20달러를 지원해주었고, 1923년 1월에는 다뉴바지방회의 회장 대리를 역임하며 대한인국민회의 사업을 도왔다. 1923년 3월 22일 스탁톤에서 문양목, 신형권, 김승길, 허규, 박영순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 지방회(회장 문양목)를 조직하고 구제원으로 활동하였다.
20여 년간 미국에서 과일 농장과 과일상점 등으로 번 모든 재산을 정리해 남은 1만 달러를 갖고, 1929년 10월 1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고향으로 귀국하였다. 그는 평양에 자리 잡고 1935년 6월 29일 평양YMCA회관에서 평양기독교청년회 소년부장 조웅천, 김지수, 박신철, 이용직, 최윤호 등과 함께 환구동우회(회장 김지수)를 조직하고 이사로 활동하였다. 당시 평양에는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 실업가와 유학생들이 100여 명 되었는데 환구동우회는 이들과의 상호 친목과 지역 사회에 대한 유익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참고문헌
- 『공립신보』
- 『신한민보』
- 『재미한인오십년사』(김원용, 혜안, 2004)
- 『송철회고록』(이상수, 키스프린팅, 198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