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개간하여 농업에 힘쓰며 물화 교역으로 상업을 발전시키며 국내 물품을 수출하여 한인들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데 두고 있다.
하와이의 한인들이 한인농상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은 농장노동자로 일할 경우 경제적인 이득이 거의 남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도시로 나가 상업에 종사하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이다.
1907년 이후부터 20년 동안 하와이의 농장은 필리핀인 노동자의 유입으로 그 수가 12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농장의 임금은 계속 정체상태에 머물렀고 여기에 엄격하고 열악한 농장생활을 탈피하려는 의식이 크게 작용하면서 한인노동자들은 대거 농장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였다.
1910년의 경우 전체 한인의 수는 4,533명인데 그 중 14살 미만의 아동 563명을 제외하면 약 4,000여 명이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연령층이었는데 그 중 한인노동자의 수는 1,753명이었다. 한인노동자의 수는 1915년 1,449명, 1916년 1,300여 명 순으로 계속 줄었다. 한인노동자들이 농장에서 도시로 이동한 결과 한인들은 보다 많은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러한 방편의 일환으로 한인들은 개별 활동보다 서로 역량을 결집하는 방향을 추구하면서 마침내 한인농상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하와이정부로부터 정식 인허를 받은 날은 1911년 9월 1일이나 실제 설립은 그 이전에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식 명칭은 ‘농상주식회사’로 칭하였고, 설립 목적은 토지를 개간하여 농업에 힘쓰며 물화 교역으로 상업을 발전시키며 국내 물품을 수출하여 한인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두었다. 설립 자본금은 1주 10달러씩 1만주로 총 10만 달러로 정하였고 존립 기한은 설립일로부터 5년으로 한정하여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하였다. 호놀룰루에 본점을 두었고 상업상 필요에 따라 각 지역에 지점을 두는 것으로 하였다.
1913년 12월 『국민보』에 나타난 한인농상주식회사의 활동을 보면 한국의 풍속과 인물이 들어간 사진첩 판매를 광고하고 있다. 이로 볼 때 농업과 상업의 물품 판매와 위탁, 그리고 유통사업에 목적을 두고 운영되었으나 물품 제조에도 관여하였다. 설립 목적으로 둔 국내 물품의 수출 시도는 일제의 무단식민통치의 영향으로 계획대로 추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활동 인물로는 박원걸, 안원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