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경남 울산에서 출생했다. 부산상업고등학교를 21회로 졸업하고, 1943년 이후 부산대양산업 사장, 1949년 이후에는 대통연탄 사장을 지냈고, 19공탄을 개발해 ‘석탄왕’으로 유명하였다.
1954년 이후 제3대 민의원(무소속, 울산을)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1955년에는 서울 성북동에 동천학사를 지어 울산, 부산 출신 중에 경제적 사정으로 서울 유학생활이 어려운 인재들을 불러 기숙케 하였고, 많은 인재들이 동천학사를 거쳐갔다. 그의 이러한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동천학사 출신들을 중심으로 송덕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되어, 2012년 11월 울산 중구 정지말공원에 송덕비 건립 제막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제3대 민의원을 시작으로 제5∼10대에 이르기까지 울산과 부산에서 7선 의원을 거치게 되었는데, 1960년에는 제5대 민의원(무소속)으로 선출되었고, 1963년 이후에는 민정당 대통령선거 사무장, 제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가 1965년 사퇴하였다. 1966년 이후에는 신한당 정책위원으로 재임하였으며, 1967년에 제7대 국회의원(신민, 전국)으로 선출되었다. 1969년 이후 신민당 원내총무, 신민당 정무위원으로 재직하였고, 1971년 제8대 국회의원(신민, 부산진을)으로 선출되었다. 제8대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신민, 부산진)에 선출되었으며, 신민당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신민, 부산진북구)으로 선출되었다.
1982년에는 중국문화대학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이후 원불교 중앙교의회 의장, 통일원 고문, 포은사상 연구원 이사장, 영일 정씨 포은 공파 종약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0년에는 미국공산주의 희생자 추도재단(The Victims of Communism Memorial Foundation) 올해의 ‘트루먼-레이건 자유기업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