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생물학에서뿐만 아니라 컴퓨터에서도 사용될 정도로 널리 쓰인다.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놓여 있다고 여겨지는 바이러스는 천연두, 인플루엔자(독감), AIDS 등 많은 감염성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지만 크기가 매우 작은 관계로 1900년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그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바이러스의 구조와 기능, 작동 방식 등에 대해 많은 것이 알려졌고, 그에 기초하여 백신을 개발했지만 변화무쌍한 번식 방식으로 치료제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매우 단순한 구조와 생물학적 특징으로 바이러스는 유전학과 진화학, 미생물학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바이러스(virus)는 ‘독’을 뜻하는 라틴어 ‘비루스(virus)’에서 유래했다. 크기가 세균(박테리아)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현미경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발견할 수 없었다. 19세기 말에 광견병 백신을 개발한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세균과는 다른 병원체의 존재를 의심했지만 그 당시 기술로는 바이러스를 찾아낼 수 없었다.
네덜란드 미생물학자 베이제린크(Martinus Beijerinck)는 프랑스 미생물학자 샹베를랑(Charles Chamberland)이 개발한 필터(샹베를랑 필터 또는 샹베를랑-파스퇴르 필터로 알려져 있으며 박테리아를 거를 수 있었다)를 이용하여 박테리아와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감염체가 증식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액성전염물질(液性傳染物質, contagium vivum fluid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바이러스라는 용어가 재도입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를 연구하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박테리오파지가 박테리아를 죽이는 특징을 보였기 때문에 항생제로서의 가능성을 엿보았던 것이다.
바이러스를 배양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진 결과, 인간배아세포에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배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의학연구자 솔크(Jonas Salk)는 1950년대에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 수 있었다. 바이러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전자현미경의 발명 덕분이다. 1930년대에 이르러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음이 밝혀졌고, 결정도 추출되었다.
영국의 여성과학자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은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의 결정을 X-선으로 촬영하고 분석함으로써 바이러스의 구조를 밝히는데 기여했다. 결국, 바이러스는 단백질과 RNA로 이루어져 있음이 밝혀졌고, 이로부터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여 자신을 번식시키는 메커니즘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바이러스는 매우 원시적 생물체로서, 일부 학자들은 핵은 물론 세포막 등의 세포기관도 없고, 독립적 효소가 없어 독립적 물질대사가 불가능하고, 생물체 밖에서는 결정체로 존재한다는 이유를 들어 바이러스를 무생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유전물질(RNA)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 껍질(캡티드)로 이루어져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에 침입한 후 역전사효소를 이용해 자신의 RNA를 원판으로 사용하여 cDNA를 만들어낸 뒤, 이를 숙주 세포의 핵 속에 밀어 넣는다. 숙주 세포는 자신의 DNA가 아니라 바이러스의 cDNA를 바탕으로 RNA를 만들어낸다. 이 때, 생성되는 RNA는 숙주 세포의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의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바이러스는 자신을 증식한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과정과 자신을 증식한 후 세포를 빠져나오는 과정도 연구를 통해 비교적 소상히 밝혀졌다. 2009년에 범유행(pandemic: 전염병의 지구적 유행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최고 수준의 전염병 경고 단계)을 낳았던 ‘신종 플루(H1N1/09)’의 치료약 ‘타미플루’는 바이러스의 세포 탈출구를 봉쇄하여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1918년 독감(일명 스페인 독감, H1N1)은 1차 세계대전과 맞물리면서 전 세계 인구 2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국내에서도 740만 명이 감염되었고, 사망자가 14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 그 후에도 1957년에 100여만 명이 사망한 아시아 독감, 1968년에 70여만 명이 사망한 홍콩 독감 등의 범유행은 계속되었고, 조류독감(H5N1)과 HIV, 에볼라 바이러스 등 새로운 바이러스 전염병도 계속 출현하고 있다.
세계적 차원의 공중위생 보건이 그 어느 때보다 잘 확립되어 있고, 관련 분야의 과학지식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바이러스의 역습’이라 불릴만한 이런 현상은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치명상만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가령,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박테리오파지는 슈퍼 박테리아의 치료법으로 최근에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인류의 역사에서 바이러스는 두려운 존재였다. 역사학자 맥닐(William McNeill)은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문명의 전파와 함께 전염병이 전파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여러 번에 거친 대참사가 빚어졌다고 주장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존재는 뒤늦게 알았지만 그전에도 바이러스가 인류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던 셈이다. 이런 조건에서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결정적 승기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을 두고 인류의 승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전쟁이 아니라 공존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고려하자는 주장이 서서히 부각되고 있다. 독감(인플루엔자)의 경우에는 독감 바이러스의 변화무쌍한 변신으로 백신 처방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병원균도 사람과의 공생을 모색하는 경향성을 띤다.
치명적 바이러스는 숙주(인간)와 함께 죽거나 우리가 겨울철에 자주 걸리는 독감처럼 독성을 약화시켜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한다. 이를 고려해 볼 때 바이러스는 박멸해야 할 적(敵)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적절한 대응을 통해 공존을 모색해야 할 대상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