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관음보살상 높이 40.1㎝, 대세지보살상 높이 39㎝. 목조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은 조성발원문을 통해 1702년에 화원 법령(法岺)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봉림사 목조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은 조사 당시 각각 불상 내부에서 복장물이 확인되었다. 관음보살상에서는 불상조성기, 다라니, 묘법연화경 등이 발견되었고, 대세지보살상은 2매의 불상조성기(佛像造成記)와 후령통이 납입되어 있었다. 각각의 보살상에서 발견된 조성기는 서로 다른 내용이었는데, 관음보살상의 1702년 조성기에는 법령(法岺)이 관음보살상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대세지보살상의 조성기에는 1670년 천태산(天台山) 내원암(內院菴)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을 조성했다는 내용이 있다. 봉림사 보살상들의 특징으로 보아 1702년 조성기가 봉림사 보살상들과 관련된 것이며 1670년 조성기는 다른 불상의 것이 대세지보살상 복장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은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에 양손은 다리 위에 두고 엄지와 구부린 중지를 서로 맞대었다. 얼굴, 보관, 옷주름의 표현 등 세부적인 표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관음보살상의 머리에는 원통형의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 가운데 화불이 조각되어 관음보살의 도상임을 알 수 있다. 신체에 비해 큰 머리는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따르고 있으며, 어깨는 좁지만 적당한 다리 너비로 안정감 있어 보인다. 턱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얼굴에 넓은 이마, 좌우로 길게 그은 수평의 눈, 낮은 코,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얇은 입술은 개성이 있으면서도 온화한 인상을 준다.
대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식으로 입었으며, 밋밋한 가슴 아래에는 일직선의 승각기를 입었다. 마치 옷을 반대로 입은 것 같이 오른쪽 배 앞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옷주름이 있는데, 대세지보살상의 옷주름과 서로 대칭을 이룬다. 하반신은 옷자락이 연꽃대좌 아래로 흘러내린 상현좌(裳懸座)를 이루며 옷주름도 서도 대칭되어 도식적이다.
대세지보살상은 관음보살상과 얼굴, 신체 비례, 옷의 표현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대세지보살상은 관음보살상에 비해 전체적으로 좀 더 길며, 상반신에 비해 다리 너비가 좁아져 신체 비례가 좋은 편은 아니다. 머리에는 중앙에 정병이 조각된 보관을 쓰고 있어 대세지보살의 도상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관음보살상에 비해 좀 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대의는 통견식으로 입고 옷주름은 관음보살상과 반대이다. 다리를 덮은 옷자락이 대좌까지 흘러내린 상현좌 형식이며, 옷주름 수도 줄어 관음보살상에 비해 단순화게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 상 모두 연꽃대좌를 갖추었는데 대좌 아래 중앙에는 원형의 홈을 마련하여 연꽃 줄기를 끼워 본존의 대좌와 연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영탑사 금동삼존불상과 유사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봉림사 목조관음보살 · 대세지보살좌상은 조성기의 내용에 따라 법령에 의해 1702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각승 법령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삼존불(1629년) 등을 조성한 인물도 있지만 활동 시기나 불상의 양식적 특징이 달라 서로 다른 인물로 생각된다. 봉림사 불상을 조성한 법령은 다른 지역에서 불상을 조성한 사례가 아직 알려진 바 없지만 경상도에서 활동했던 조각승일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얼굴, 옷, 대좌 등의 표현기법도 이 시기에 활동한 조각승들과는 차이가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의 다양한 특징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