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운흥사에 봉안되어 있는 1649년에 제작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개설
내용
석가여래상은 단정하면서 당당하게 결가부좌하여 앉은 자세에 머리를 약간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 엄지와 중지를 가볍게 맞대고,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한 촉지인(觸地印)을 하고 있다. 머리와 육계의 불분명한 경계에는 중간계주, 정상에는 정상계주를 두었다. 얼굴은 턱이 둥근 방형이며, 입술의 양끝이 살짝 올라가 엷은 미소를 띤 부드러운 인상이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은 변형 편단우견식으로 입었는데 오른쪽 어깨의 자연스럽게 접힌 대의 주름이 특징적이며, 가슴 아래에는 가운데를 대각선으로 접은 승각기를 입고 있다. 다리 앞에는 좌우로 3개의 옷주름이 단순하지만 끝단은 물결모양 같이 율동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왼쪽 다리 위에도 소매에서 흘러내린 넓적한 옷자락이 있다.
좌우 협시불인 약사와 아미타여래는 머리와 얼굴 형태, 자세 등이 본존불인 석가불과 유사하나 크기와 수인 및 옷을 입는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손 모습에서 약사여래는 왼손을 어깨 위로 들고 오른손은 다리 위에 두어 엄지와 구부린 중지를 맞대었고, 아미타여래는 약사여래와 손 모습이 반대이다. 약사와 아미타여래는 석가여래상에 비해 좀 더 근엄한 느낌을 준다. 옷은 왼팔이 드러나지 않게 입은 변형 통견식이며, 오른쪽 어깨와 다리 사이의 옷주름, 왼쪽 무릎 위 옷자락 등은 딱딱하게 변화되어 차이를 보인다.
긴 상반신에 넓은 다리의 신체비례, 얼굴이나 옷주름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입체적인 표현은 응매가 조성한 1650년 작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과 매우 유사하다. 즉 운흥사 대웅전 삼존상은 목조임에도 불구하고 소조의 부드러움과 입체감이 잘 드러나 있다. 응매는 순천 송광사 대웅전 삼존불 조성(1614)에 처음 등장하였는데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불상은 많지 않다. 다만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는 산청 율곡사 대웅전에도 목조석가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후기 경상도지역 불교조각 연구』(이희정, 세종출판사, 2013)
-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송은석, 사회평론, 2012)
- 『조선후기 조각승과 불상 연구』(최선일, 경인문화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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