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목조불좌상.
내용
세부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우선 육계, 즉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고 뾰족하여 마치 동남아시아 불상의 영향을 받은 듯하며 더불어 이국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러한 육계는 조선시대 불화에는 종종 등장하지만 조각으로 표현된 경우는 드물다. 얼굴은 갸름하고 눈이 위로 많이 치켜 올라갔으며 입술은 작게 표현되어 전반적으로 이목구비가 역삼각형의 구도를 이룬다. 명상에 잠겨있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또렷한 정신으로 예불자를 바라보는 듯하다. 신체에 비해 작은 불두의 비례도 전통적인 불상에서는 드문 표현이며 현실적인 인체 비례와 닮아 있어 서양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항마촉지인을 결한 당당한 자세는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무렵의 불상양식을 충실히 반영한 반면, 그 위에 걸친 가사의 옷 주름 표현은 굵고 강하게 표현되어 고려시대 불상에 더 가까운 편이다.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옷 주름은 보다 얕은 부조로 얇게 표현되어 인체를 부각하는 특징이 있는데, 조계사 목불좌상은 인체와 옷 주름을 모두 강조하려는 조형성이 엿보인다.
원래는 영암 도갑사(道岬寺)에 봉안되어 있던 것을 1938년 옮겨온 것이다. 현재의 대웅전도 원래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에 있던 보천교 십일전(十一殿)을 옮겨온 것인데, 이때 불상을 새로 조성하지 않고 전국의 사찰에서 물색하여 도갑사로부터 이관하여 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1938년에 옮겨온 이후 줄곧 조계사 대웅전의 주존불상으로 봉안되었으나 대웅전의 규모에 비해 불상의 크기가 작다는 견해가 제기되어 2006년에 새로 조성한 삼세불상과 교체되었다. 지금은 대웅전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따로 봉안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서울의 문화재(증보판)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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