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인 1740년(영조 16)에 도봉산의 원통암에서 제작되었다. 처음에는 삼각산의 진관암에 봉안하였는데, 6 · 25전쟁 이전에 도선사로 옮겨왔다고 전한다. 아미타불상은 높이가 70㎝로 큰 머리, 긴 상체, 그에 비해 왜소한 하체가 불균형을 이룰 것 같으면서도 전반적으로 안정감 있는 구도를 보인다. 정수리 부분은 육계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크게 만들었으며, 정상계주가 크고 굵게 솟아있다. 중간계주도 표현되어 있는데 육계가 시작되는 부분 정도에 작게 자리 잡고 있다. 두 눈은 수평을 이루면서 살짝 뜨고 있으며 콧망울은 굵은 편이며 입은 초승달 형태로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인데, 이목구비가 전반적으로 안면의 중단 이하에 몰려있는 편이다. 통견의 법의를 걸치고 있는데 얕고 단순 명료한 옷 주름이 흘러내리고 있으며, 속에는 내의를 입었는데 별다른 매듭이나 주름 없이 끝이 비스듬히 한번 접히는 정도만 표현했다. 드러난 가슴 부분에는 양감은 없고 밋밋하며 짧은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는데 거북목처럼 약간 앞으로 숙인 모습이다. 별도로 만들어 삽입한 손은 하품중생인을 결하고 있다. 우협시 보살인 대세지보살상은 높이가 62.5㎝로서 본존인 아미타불보다 조금 작게 만들었다. 구름 문양과 불꽃 보주 문양으로 이루어진 입식이 가득 달린 크고 화려한 보관을 착용하고 있다. 관대의 좌우 끝에서는 각각 두 가닥의 띠 자락이 흘러내리는데 하나는 크고 경쾌한 ‘U’ 자형으로 반전되고, 다른 하나는 유려하게 ‘S’ 자형으로 구불거리며 흘러내리고 있다. 안면의 묘사는 본존 아미타불과 거의 같으나 고개를 더 들고 보다 환하게 웃고 있어 조금 차이를 보인다. 신체와 수인의 묘사도 본존불과 거의 같아서 보살이 착용하는 장엄은 없다. 다만 어깨 위로 머리카락이 길게 구불거리며 흘러내리고 있으며, 오른손바닥이 완전히 밖으로 향하지 않고 다소 안으로 향한 것이 차이점이다. 불상의 복장에서 발원문과 개금기가 발견되어 제작 당시에 관한 사항을 살필 수 있다. 양공(良工)인 인성(印性)과 치준(緇俊), 지한(智閑) 등이 제작하였는데 인성은 1748년에 조성된 백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1993년 지정) 제작에도 참여한 인물이다. 조선 후기 조각장의 계보와 양식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