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이윤을 좌우하는 다양한 변수들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부실기업의 출현이나 부실기업과 관련된 주체들의 비용 및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제반 조치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기업의 부실화와 부실기업의 정리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부채의 처리 문제, 다른 하나는 해당 기업 자체의 존속 문제이다. 원칙적으로 해당 기업이 경제성을 상실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정리의 주체들은 그 기업의 청산 절차를 실행할 것이고, 장기적 이윤이 자산의 기회비용보다 크다고 파악되면 해당 기업의 회생과 정상적 경영을 위한 방책을 선택하게 된다.
본격적 산업화가 추진된 이래 한국에서 부실기업정리를 위해 취해진 수단은 청산과 법정관리, 은행관리, 산업합리화, 금융기관(채권자)들 간의 협약 등이다. 한국경제의 빠른 발전은 국민경제와 기업 단위의 고도성장을 실현하면서도 심각한 위기상황을 경과하는 과정이었기에 상당히 큰 규모의 부실기업 정리를 여러 차례에 걸쳐 동반했다.
먼저 1960년대 말 이후 한국경제는 거액의 부채로 인해 경영난에 빠진 부실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에 정부는 기업도산 사태의 확산과 금융권 전반의 부실화를 우려해 부실기업 정리를 단행했다. 1969∼1971년 「기업합리화조치」, 1972년 「8·3조치」가이에 해당한다.
1969∼1971년 「기업합리화조치」는 산업은행에 의한 출자 관리, 산업은행 혹은 시중은행에 의한 부분 또는 전면관리가 대부분이었고, 부실의 정도에 따라 법정관리를 통해 정리하는 경우도 있었다.한편 「8·3조치」는 모든 기업들에게 부채조정을 해줌으로써 금융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법이자, 사채시장의 양성화를 의도한 것이었다.
1984∼1988년, 제5공화국 시기에는 정부가 주도한 해외건설업과 해운업 등의 부실기업정리가 있었다. 이는 기업합리화에 그치지 않고 불황산업을 회생시키려는 산업정책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앞의 사례들과는 달리 「조세감면규제법」 개정, 「공업발전법 제정」, 「한국은행법」의 적극적 해석 등 시행 근거법령을 두고 정부가 개입하는 형태였다. 대부분이 3자 인수방식을 취하면서 인수기업과 금융기관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추진되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부실기업 정리의 정부 주도성이 약화되었다. 1993년 헌법재판소가 1986년 행해진 국제그룹 해체 조치를 공권력에 의한 기업 활동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사례로 보고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중요한 계기였다. 특히 대대적 외환위기 속에 있던 국면에는 일명 부도유예협약, 워크아웃협약,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 채권금융기관 및 주채권은행(민간주체)이 부실기업 정리를 주도해나가는 방법이 택해졌다. 이는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관치금융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 정부와 긴급구제금융 지원협약을 체결하면서 제시한 조건인 민간자율과 시장원리에 기초를 둔 새로운 기업구조조정 제도 구비 요청이 작용했다.
국민경제 전반을 위협하는 경제상황에 이루어진 집단적 부실기업 정리의 공정성, 효율성, 사회적 책임성, 정부 역할의 바람직한 범위 등은 매번 중요한 논점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여기에는 1961년 이후 정착되어간 정부의 산업·금융정책, 기업의 자본축적전략 등이 지녔던 가능성과 한계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