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방우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경상북도 안동군 편항시장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배암이(裵巖伊)
인물/근현대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1년 8월 20일
사망 연도
1920년 5월 16일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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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배방우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의 편항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20년 5월 16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상북도 안동군 편항시장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1891년 8월 20일 태어났다. 배암이(裵巖伊)라고도 한다. 1920년 5월 16일 사망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주요 활동

1919년 3월 1일 경성, 평양, 안주, 의주, 선천, 원산, 진남포에서 일제히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안동군 임북면 계곡동의 유림(儒林)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 이강욱(李康郁), 홍명성(洪明聖), 박재식(朴載植), 박교희(朴敎熙), 박진선(朴晋先), 유곡란(柳谷蘭) 등과 함께 임동면의 편항(鞭巷)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3월 21일 2시경 편항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배방우는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일본 군경이 시위 주동자였던 유연성과 배대근(裵大根)을 연행하려고 하자, 그에 반발하여 시위대는 일본 군경에게 몰려들었다.

그때 일본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서 권총 한 발을 쏘자, 분노한 시위대는 일본 군경에게 달려들어서 대검, 권총과 주재소에 비치되었던 총 · 칼 · 탄환 등을 압수해서 파괴하거나 우물에 버렸다. 시위대는 일본 군경 한 명을 집단 구타하였으며, 일본 군경의 사택을 습격하였다. 오후 5시경 시위대는 면사무소로 가서 집기 등을 파괴하였다. 편향시장 만세시위는 다음날인 3월 22일 오후 3시까지 전개되었다.

일본 군경은 편향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을 색출하였으며, 배방우는 그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 건조물(建造物) 손괴(損壞), 가택 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20년 5월 16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희곤, 『안동사람들의 항일투쟁』(지식산업사, 200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국가보훈처, 1971)

판결문

「판결문」(대구지방법원, 1919. 5. 31.)

인터넷 자료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집필자
한승훈(고려대학교 독일어권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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