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이촌향도(離村向都)를 통한 도시 인구의 급팽창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1970년대 초반에는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서울의 강남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미 1963년 경기도 광주군 일부가 현재 서울시 강남구 지역으로 편입되었고, 1969년에는 강남과 강북을 잇는 한남대교가 준공되면서 강남 개발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여기에 1967년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되고, 1970년 완공되면서 강남 지역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초기 강남 개발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1970년대 중반 과밀화된 강북 구도심을 벗어나 주변부 신시가지 건설을 통한 ‘다핵도시’ 개발 구상을 마련했다. 이는 곧바로 강남 개발로 옮겨졌는데, 한강에 대한 ‘종합 대책’을 통해 택지 개발과 도로 개설을 추진해 여의도를 부도심으로 개발하고, 애초 강북 왕복 노선으로 계획된 지하철 2호선을 강남을 포함한 순환노선으로 변경해 건설했다. 이와 함께 당시 정부에서는 강남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강남 8학군’ 조성을 비롯해 ‘강북 억제, 강남 개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 1970년부터 1999년까지 30여 년 동안 강북 인구가 430만에서 520만으로 1.2배 정도 증가한 데 비해 강남 인구는 120만에서 510만으로 4.2배 증가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강남의 토지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1년 새에 10배 이상 뛰어오르기도 했다. 이때부터 강남 일대의 토지는 집중적인 투기대상이 되었으며, 투기를 통해 일확천금을 손에 쥔 땅 부자들이 속출했다. 특히 경제적 ·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던 일부 가정주부들도 이러한 개발 열풍과 투기에 뛰어들어 투기열과 인플레를 더욱 심화시켰다.
투기는 토지에 국한되지 않고,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아파트로 번져갔다. 특히 1975년 분양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투기의 상징적인 대상이 되었고, ‘복부인’이라는 신조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언론에 의해 ‘투기를 위해 복덕방을 수시로 출입하는 상류층 부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된 ‘복부인’은 이후 부동산 투기의 대명사로 대중화되어 국어사전에도 등재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