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출신으로, 1870년 2월 20일 출생하여 1919년 3월 22일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신상경(愼尙絅)이고, 어머니는 죽산 전씨(竹山全氏)이다.
1919년 3월 20일 가조면 장기리에서 김병직(金秉直), 어명준(魚命俊) 등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다 일본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이에 3월 21일 오문현(吳文鉉), 신병희(愼炳禧), 어명우(魚命佑), 어명철(魚命喆), 이병홍(李秉洪), 김호(金濩) 등 6인을 추진위원으로 선출하여 김병직과 어명준을 구하기 위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가조면 · 가북면 일대에 이 계획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계획이 사전에 일본 헌병대에 누설되어 주동 인물들이 체포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신문구(愼文九)는 가조면과 가북면 주민 3,000여 명과 함께 3월 22일 오후 2시 30분경, 몽둥이를 가지고 장기리 만도정(晩嶋亭) 앞에 대형 독립기를 세운 후, 체포된 지사들의 석방과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창읍으로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사포현( 沙浦峴)에 이르렀을 때, 일본 헌병대는 공포를 발사하며 해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시위 군중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함성을 지르며 헌병대를 향해 돌진하였고, 맨 앞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던 신문구는 헌병대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