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이에 두 사람은 시위대를 빠져나와 헌병 분견소로 달려가 유리창과 서류 및 기물을 모두 파괴하였다. 헌병 주재서원들이 시위 가담자 60여 명을 체포해 오자, 두 사람은 이들과 힘을 합해 일본 헌병대와 난투극을 벌였으나 체포되어 3월 21일 거창읍에 있는 헌병 분대로 압송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마을의 유지들은 3월 22일 거창읍 장날에 다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오문현(吳文鉉) · 신병희(愼炳禧) · 어명우(魚命佑) · 어명철(魚命喆) · 이병홍(李秉洪) · 김호(金濩) 등 6인을 대표로 선출하였다.
이들은 가북면과 가조면을 비롯하여 인근의 마을 주민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었고, 3월 22일 아침 거창 주둔 일본군 헌병대는 김채환(金采煥) · 김호 · 오문현 · 어명철 · 최영순(崔榮淳) 등을 체포하였다.
오후 2시 30분경 3,0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은 몽둥이를 들고 장기리 만도정(晩嶋亭) 앞에 ‘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을 세우고, 주동 인물의 석방 등을 요구하며 만세 시위를 시작하였다.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시위대가 사포현(沙浦峴)에 이르자, 길을 막고 있던 일제 헌병은 공포를 쏘며 시위대의 해산을 요구하며 무차별 총격을 가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김건회 외, 『국내 3.1운동Ⅱ- 남부』(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국가보훈처, 1971)
- 이용락, 『삼일운동실록』(금정, 1965)
주석
-
주1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과 남하면 둔마리를 연결하는 고개. '살피재'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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