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조합령」은 1909년 제정된 재조선 일본인학교 교육과 관련된 법령이다. 1909년 12월 27일에 제정되고 191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일본은 1905년 이래 정부 차원의 재조선 일본인 교육을 지원하면서부터 일본인 교육제도의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으며, 「학교조합령」의 제정을 통해 일본인 교육 관련 재정 확보는 물론 별학제에 따라 일본인학교를 보호, 육성하였다.
1909년 2월 1일 통감부는 재조선 일본인학교 교육과 관련된 첫 번째 법령으로 「소학교규칙」을 제정하였다. 이어 1909년 12월 27일 두 번째 법령으로 재조선 일본인이 학교조합을 설립,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한 「학교조합령」을 제정하였고, 1910년 1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1909년 조선에는 이미 적지 않은 일본인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통감부가 다시 일본인 학교 운영을 위한 「학교조합령」을 제정하고 학교조합을 설립하려 한 목적은 일본인 교육재정 확보에도 있었지만, 더 근원적인 목적은 바로 재조선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의 별학제 실시라는 구상에 있었다.
조선의 「학교조합령」과 학교조합은 일제가 조선에서 별학제를 실시하기 위해 마련한 핵심적인 법령이었다. 재조선 일본인들이 그들의 자녀 교육 관련 학교 설립운영을 위해 조직한 학교조합은 이처럼 「학교조합령」에 의하여 보호받을 수 있었다.
학교조합은 1908년경부터 1944년 중반까지 총 506개가 설립되었다. 1914년 개편된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전국의 12개 부와 220개 군 가운데 98.7%에 해당하는 229곳의 부와 군에 설립되었다. 학교조합에서 설립, 운영한 학교는 소학교, 고등여학교, 실과고등여학교, 상업전수학교, 간이상업전수학교, 유치원 등 다양하나 그 중심 대상은 소학교였다. 일제강점기에 학교조합에서 설립한 학교 전체 중에서 소학교의 비중은 연평균 94% 정도였다.
당시 경비기관, 신식의료기관, 그리고 소학교 세 가지는 일본인의 이주에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될 최소한도의 필수적 시설로 여겨졌다. 이와 같은 일본인학교의 설치는 「학교조합령」으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 결과 1910년도 말 현재 약 17만 명의 재조선 일본인에 대해 소학교 128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여학교 3개교, 상업학교 2개교, 각종학교 6개교의 일본인 학교가 설립되었다.
의무교육제도가 실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학교 취학률은 1910년에 98%에 달했다. 당시 조선인 자제를 대상으로 한 보통학교가 보조학교를 포함해서 125개교, 학생수 1만 4834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조선 인구의 1%를 약간 넘는데 불과한 재조선 일본인 자제를 대상으로 한 소학교는 128개교이고, 학생수는 1만 7336명이었다.
「학교조합령」은 재조선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을 분리 교육한다는 별학제 실시 구상을 드러낸 법령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일본인 아동과 조선인 아동을 같은 학교에서 배우게 한다는 공학은 처음부터 일본 당국의 선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통감부의 교육정책은 조선인의 노예화와 일본인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첨병화라는 이중구조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