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규칙」은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정한 서당 교육을 통제하기 위한 법령이다. 서당을 공립학교 교육의 보충 수단으로 여겼던 일제강점자들은 서당의 지도 감독이라는 미명 아래 집요하게 서당 교육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획책하였다. 1929년 6월 17일에는 조선총독부령으로 「서당규칙」을 개정하여 서당에 의한 민족 교육을 근본적으로 억압, 차단하였다.
조선총독부는 공립보통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사립학교 및 서당 등의 여러 교육기관을 공립학교로 수렴, 통일하여, 소위 ‘공립보통학교체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사립학교 수는 감소했지만 그에 반비례하여 서당의 숫자는 점차 증가하였다.
일본 침략자의 마수가 사립학교에 뻗치자 서당이 항일애국의 거점으로 부상하였다. 물론 공립학교체제 하의 교육기관이라고 하여도 통제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조선인 학생의 존재 자체가 식민권력의 존재론적 불안의 원천이었다. 그들이 사립학교 및 서당을 존속시킨 현실적인 이유는 재정적 한계와 모순으로 인한 것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적 수탈에 의한 조선인의 피폐화가 식민지 교육의 보급을 저지했다고 말할 수 있다.
1918년 2월에 조선총독부령 제18호로 「서당규칙」을 제정하여 '1. 서당을 개설하려고 할 때에는 도지사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2. 서당의 교과서는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교과서를 사용하여야 한다. 3. 조선총독부가 적격자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서당의 개설자 또는 교사가 될 수 없다. 4. 도 장관은 서당의 폐쇄 또는 교사의 변경, 기타 필요한 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였다.
1929년 6월에 조선총독부령으로 「서당규칙」을 개정하였는데, 이때의 개정은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일어와 산술 교과서를 사용할 것, 적의의 방법으로 일본의 국민도덕에 관한 사항을 교수케 할 것 등이 그 요점이었다. 조선총독부가 단속을 엄격히 함과 동시에 불허가 방침을 취하자, 자연히 서당은 점차 그 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교육에 불만을 품은 조선인 자제는 물론 학자금이 궁한 빈곤 가정의 자제들은 자신들에게 유일한 교육기관인 서당으로 모여들었다. 재래의 서당이나 각종 민족교육기관에서는 많은 조선인 아동이 그들의 언어를 지키고 민족을 구하기 위해 학습에 힘썼다.
1918년과 1929년 양차에 걸쳐 공포한 「서당규칙」은 일제가 우리에게 사상 감시와 아울러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술책이었다. 서당을 강력히 단속함으로써 그들은 90%가 넘는 학령 아동을 문맹으로 묶어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