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증산교 안내성파인 선도교를 창립한 종교창시자.
생애와 활동사항
1909년 증산은 안내성에게 『현무경(玄武經)』과 흰 병을 주면서, “이 자리를 3년간 떠나지 말고 앉아서 『태을경(太乙經)』을 읽으라.”고 하였으므로 그 뒤 증산이 사망한 줄도 모르고 가난한 속에서도 3년간 수련을 계속하였다.
1911년 수련을 마치고 고부인(高夫人: 본명 高判禮)이 선도교(仙道敎)를 설립할 때 참여하였으나, 차경석(車京石)과 뜻이 맞지 않아 1913년 여수 가국리에서 교당을 창설하였다.
1927년에는 전주군 우림면 청도리(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백운동으로 본부를 옮겨 전국에 있는 신도들 수백 명을 이주시켜 교인촌을 형성하였다. 그는 자기가 증산의 수제자이므로 증산으로부터 새 시대의 운수를 조종하는 능력을 받았다고 하고, 일심으로 수도하면 멀지않아 증산이 환생하여 큰 복을 주리라고 하면서 신자들에게 주문 한 가지씩을 주고 기한을 정하여 읽게 하되, 그 기한이 끝나면 다른 주문을 주면서 수련을 시켰다.
1929년 보천교를 탈퇴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교세가 크게 확장되자, 한때 교명을 증산대도교(甑山大道敎)로 바꾸기도 했는데, 이 무렵 신도수가 3천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 뒤 교당이 점차 위축되다가, 1949년 사망했다. 안내성이 창립한 선도의 신앙대상은 천선생 즉 천황·지황·인황으로서의 증산이다.
참고문헌
- 『범증산교사』(홍범초, 범증산교연구원, 1988)
- 『증산교사』(이정립, 증산교본부,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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