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지 홍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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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년(창왕 1) 최광지가 문과에 급제하여 받은 증서.
문헌/문서
  • 관련 인물최광지(崔匡之)
  • 발급자고려 국왕
  • 소장처개인(전**)
  • 수급자최광지(崔匡之)
  • 용도과거 합격증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0년
  • 남권희 (한국전적문화재연구소)
  • 최종수정 2023년 0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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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최광지 홍패는 1389년(창왕 1) 최광지가 문과에 급제하여 받은 증서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최광지가 1389년 문과 ‘병과 제3인(丙科 第三人)’으로 급제하여 받았다. 이 홍패는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 홍패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후대의 것이나, 어보(御寶)가 날인되어 있고 형식상 완결성을 갖춘 자료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관제 및 어보 사용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1389년(창왕 1) 최광지가 문과에 급제하여 받은 증서.

제작 및 발급 경위

최광지(崔匡之)가 1389년(창왕 1) 문과 ‘병과 제3인(丙科 第三人)’으로 급제하여 받은 문서이다. 최광지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문신으로 생몰 연도는 알 수 없다.

형태와 내용

홍패는 배접(褙接)되어 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부분의 크기는 세로 62.4㎝, 가로 61.6㎝ 내외이다. 문서의 상부와 하단 부분이 훼손되어 있으나, 본문의 내용과 인문(印文)은 온전히 남아 있다.

본문은 ‘성균생원최광지병과제삼인급제자(成均生員崔匡之丙科第三人及第者)’와 ‘홍무이십이년구월일(洪武貳拾貳年玖月日)’이라는 문장이 두 줄로 기록되어 있으며, 발급연월일의 위에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의 어보(御寶)가 날인되어 있다.

‘고려국왕지인’은 명나라 태조인 홍무제가 원이 망한 뒤인 1370년(공민왕 19)에 고려 국왕에게 하사한 금인(金印)으로, 조선 개국 직후에도 사용되었다.

의의 및 평가

고려 말에 제작된 문서로,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 홍패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늦지만, 어보가 날인되어 있고 형식상 완결성을 갖춘 자료이다. 조선시대 홍패의 발급 양식이 고려시대에 이미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관제(官制) 및 어보 사용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020년 4월 23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편, 『한국고문서정선』 2(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2)

  • - 이수건 외, 『16세기 한국 고문서 연구』(아카넷,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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