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이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를 편찬한 이듬해인 1784년(정조 8)에 남은 저작을 ‘경간(經簡), 별간(別簡), 자간(子簡), 집간(集簡)’으로 구분하여 64권 25책으로 정리한 필사본이다. 이 필사본의 일부는 후에 『보만재사집(保晩齋四集)』을 편찬할 때 활용되기도 하였다.
서명응은 1779년(정조 3)에 대제학이 되었으며, 1780년에 치사한 뒤에도 『국조보감(國朝寶鑑)』 찬집 등 국가적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그는 개인 저술에도 전념하여 1783년(정조 7)에 60권 31책의 『보만재총서』를 편찬하였다. 그리고 남은 저작을 필사하여 『보만재비급(保晩齋秘笈)』으로 정리하였다가 1784년에 『보만재잉간』으로 편찬하였다. 이후 이 책을 계속 수정하기도 하고 일부는 『보만재사집』 편찬에 수록하기도 하였다. 64권 25책 중에 13책만이 전해진다.
서명응은 어숙권(魚叔權)의 『고사촬요(故事撮要)』를 개정하여 『고사신서(故事新書)』를 편찬하는 등 영조·정조대에 국가적 편찬사업에 참여한 문신(文臣) 학자로 『보만재총서』를 편찬하였다. 그의 실학 정신은 아들 서호수(徐浩修)를 거쳐 손자 서유구(徐有榘)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편찬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1780년(정조 4) 퇴임 후에 그동안의 저술을 모아 『보만재총서』를 완성하였다. ‘보만재’는 서명응이 왕으로부터 받은 호이며, 이 책은 개인적 시문집이 아니라 경서, 천문, 지리, 음악, 언어 등을 망라한 종합 저술이다. 정조는 이 책에 대해 “조선 400년 동안 이러한 거편은 없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보만재총서』는 “경익(經翼), 별사(別史), 자여(子餘), 집류(集類)”의 4부 체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만재잉간』은 그 책에 수록하지 못한 『홍범오전(洪範五傳)』 5권, 『주역사전(周易四箋)』 19권, 『자치통감강목삼편(資治通鑑綱目三編)』 20권, 『시사팔전(詩史八箋)』 10권, 『도덕지귀(道德指歸)』 2권, 『참동직전(參同直詮)』 4권, 『시악집정(詩樂集訂)』 5권, 『방언집석(方言輯釋)』 4권 등 8종의 서적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에 『주역사전』, 『시사팔전』, 『참동직전』 등 3종은 전질이 전해지지 않으며, 나머지 5종도 결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범오전』은 『서경』「홍범」편에 대한 기존의 주석에 자신의 주석을 덧붙였으며, 『자치통감강목삼편』은 세손 정조의 명령으로 편찬된 명사(明史)이다. 『도덕지귀』는 『도덕경』의 주석서이며, 『시악집정』은 악서(樂書)의 일종으로 조선의 역대 악장을 정리하였다. 『방언집석』은 당시 사용하던 중국어[漢], 만주어[淸], 몽고어, 일본어[倭] 등의 방언을 채집하여 언해한 언해서이다.
한편, 『시악집정』은 『국조시악(國朝詩樂)』으로, 『방언집석』은 『방언집석(方言集釋)』으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서명응 저작의 과정과 폭을 보여주는 거작이다. 특히 『시악화성』은 조선시대 음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방언집석』은 동아시아 언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