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태조와 신의왕후의 위판을 봉안한 사당인 영흥본궁을 조선 태조의 창업 사적으로 표장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1792년에 편찬된 예서.
개설
편찬/발간 경위
내용
건치는 영흥본궁의 위치와 창건 및 이후의 변천에 대한 약술이며, 전교는 양 본궁에 대한 정조의 명을 모아놓았다. 축문은 영흥본궁에 종백을 보내 섭행하는 작헌례의 축문, 영흥본궁 제1실에 제향(躋享)하는 축문, 영흥본궁 제향일(躋享日)에 제2실의 축문 등 3종이며, 모두 어제이다. 주계는 검교직각 서영보 등 신하들이나 예조에서 본궁에 대해 아뢴 기사들이다.
권2의 도식은 별대제와 별소제, 삭망제, 태백제, 야백제, 야흑제의 제수 진설도와 제품표이다. 제품표는 여섯 분야로 나눈 정간식 표이다. 1부터 3까지는 가로 5줄과 세로 9줄이며, 4부터 6까지는 세로가 4줄 혹은 5줄이다. 가로에는 제품, 세로에는 제사 종류를 구분하고 각 빈칸에 해당 사항을 기록하였다.
1의 제사 종류는 10월별 대제, 4월별 대제, 정조제, 6월 반행제, 7월 추절제, 8월 산제, 11월 동절제, 동지 다례 등이다. 2의 제사 종류는 정월망, 2월 삭망부터 6월 삭망까지, 3의 제사 종류는 7월 삭망부터 12월 삭망까지이다. 4의 제사 종류는 별대제 2회, 별소제 6회, 삭망제 23회, 총수 등 세로 5줄이며, 총수에는 진배처(進排處)나 무역(貿易) 등이 아울러 기록되었다. 5의 제사 종류는 5월 태백제, 정월 야백제, 12월 야흑제 등 3종이다. 6의 제사 종류는 태백제, 야백제, 야흑제, 총수이며, 총수에는 역시 공급 방식이 기록되어 있다.
제기는 은시(銀匙) 5부(部)를 비롯하여 제기의 종류별 수량을 나타내고 그 아래에 세주로 규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끝 부분에는 이 제기들을 정조 임자년[1792년(정조 16)]과 을묘년[1796년(정조 20)]에 내각에서 만들어 보냈다고 밝혔다.
홀기는 제향 절차를 창하여 알려줄 때의 식순이고, 배설은 감실과 사당 및 창고 등에 시설하거나 보관 중인 각종 기물의 목록이다. 수리는 정전 9칸과 이안실 6칸, 전사청 12칸, 외재실 8칸, 내재실 9칸 반, 각문쇄약 10부, 태백단, 홍전문 등의 수리 현황과 소용 물품 등에 관한 기록이다.
진공은 노비와 해척(海尺), 선척(船隻), 어량(漁梁), 염분(鹽盆), 둔전(屯田), 급복(給復), 북소미(北小米), 영무곡(嶺貿穀), 비공급대(婢貢給代), 잡세 등 영흥본궁의 제향과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의 염출에 대한 일체의 규정이다. 관속은 본궁에 소속된 별차와 그 이하 식비(食婢)까지의 인원구성이다. 절목은 본궁의 운영 규칙 27조이다. 부록으로 무역 절목이 있는데, 각 제수용 물품 구입에 관한 규정이다.
끝에는 부록으로서 경사절목(京司節目) 16조가 수록되어 있는데, 본궁 제사에 관하여 중앙 관서에서 행할 각종 관장 사항을 규정한 것이다. 그 뒤에는 절목에 미처 포함시키지 못한 항목을 수록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조가 편전에 친림하여 함흥과 영흥에 보내는 의대 등을 봉과한 후 그대로 친히 전하고 공경히 맞이하는 의절의 의주이다.
참고문헌
- 『영흥본궁의식(永興本宮儀式)』
- 「숙종대 신덕왕후 본궁 추부 논의와 본궁 인식의 변화」(윤정, 『한국사학보』37, 2009)
- 「정조의 본궁 제의 정비와 ‘중흥주’ 의식의 강화」(윤정, 『한국사연구』136, 2007)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e-kyujanggak.snu.ac.kr)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lib.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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