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892년(고종 29) 가야산 해인사 국일암에 조성된 불화.
제작 배경
내용
조선 후기 출생한 해에 따라 본명을 주재하는 칠성신이 다르다는 칠성본명신앙에 대한 대중적 호응이 높아지면서 칠성은 도상에서의 비중도 커지게 되었고 각각의 화폭으로 제작하는 각부도 형태로도 만들어졌다. 칠성여래와 칠원성군이 짝을 이루어 개별 화폭에 그려지는 칠성각부도상(七星各部圖像)은 16세기 불설북두칠성연명경(佛說北斗七星延命經) 변상판화에 보이고 있다.
형태 및 특징
그림을 향해 우측에서 5번째 자리한 치성광여래는 특징적인 지물인 금륜도 가지지 않은 형태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것 이외에는 칠성여래와 존격을 구분할 수 있는 크기의 차이 또는 외형적인 특징은 없다. 화면에서 치성광여래와 칠성여래가 존격에 따라 형태적 차이를 보이지 않은 이유는 본명성신(本命星神)으로 모셔지는 칠성여래의 중요도가 크기 때문이다.
여래 아래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홀을 쥐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일궁천자와 월궁천자가 협시하고 있는 자미대제이다. 자미대제 좌우에 같은 형태로 묘사된 7명의 인물은 칠원성군을 그려낸 것이고 그들 사이로 그려진 소형의 인물들은 또 다른 모티프로 묘사된 칠성이다. 칠성여래 사이 상투장식을 하고 홀을 가진 인물들은 칠성도에 그려지는 성신(星辰)을 의인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고령 관음사 칠성각에 봉안된 「칠성도」는 1892년(고종 29) 5월에 가야산 해인사 국일암에서 조성 봉안되었던 작품으로 관음사로 이운 되어진 시기와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 이 불화는 수량적 규모로 인해 봉안하는 장소의 공간적 제약이 있었던 칠성각부도를 소규모 암자라는 소장처의 규모에 맞게 변용하여 한 화면에 전부를 담아낸 새로운 형태의 칠성각부도상을 보여준다.
이 그림을 그린 전기(典琪)는 고령 관음사 칠성도 이전 불화를 그리면서 칠성각부도상을 채택한 사례가 없다. 전기의 스승인 연호당 봉의는 이 그림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옥천사 연대암 칠성도를 1893년에 제작하였다. 따라서 전기가 그린 고령 관음사 칠성도는 능가사와 통도사 안양암에서 칠성각부도를 제작하였던 봉의의 영향을 받아 초본을 구성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한국의 불화 화기집』(성보문화재연구원, 2011)
- 안귀숙 · 최선일, 『조선후기승장인명사전』 - 불교회화(양사재, 2008)
논문
- 정진희, 「고성 옥천사 연대암 치성광여래도 도상연구」(『동악미술사학』 27, 동악미술사학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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