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은 암염, 천연 함수(鹹水), 해수 등의 소금 원료에서 얻는다. 우리나라는 이 중 해수만을 이용하였다. 20세기 이전 한국 영토에서 이용된 소금은 해수를 끓여 얻는 자염(煮鹽)이 대부분이었다. 삼국시대에 소금 관련 기록이 처음 나오고, 자염 관련 기록은 고려시대에 처음 보인다. 하지만 기록에 없던 그 이전 시대부터 자염을 생산했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조선 초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확인된 염분(鹽盆) 수는 1,362개였다. 이는 염분의 큰 비중을 차지하였던 경기도와 전라도의 통계자료가 반영되지 않은 숫자였기 때문에 실제 수는 적어도 2천 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염분은 자염을 생산하는 최종단계의 핵심 도구이다. 『조선전매사(朝鮮專賣史)』에 따르면 대한제국 말기 1910년 전후에 조사한 전국의 염분 수는 4,206개였다. 이 중 전남이 37%, 경기도가 19%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자염 생산은 줄기 시작하여 1960년대 이후에는 자취를 감췄다. 최근 2000년대 이후에 제조법을 현대적으로 복원하여 적은 양이 생산되고 있다.
자염은 크게 2가지 방식으로 생산되었다. 하나는 해수를 바로 끓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해수 염도를 높인 짠물을 끓이는 방식이다. 전자를 해수직자법(海水直煮法)이라 하고, 후자를 염전법(鹽田法)이라 한다.
해수직자법은 갯벌이 없어 염전을 만들 수 없었던 동해안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염전법은 염전에서 해수의 염도를 크게 올려 짠물[鹹水]을 만든 뒤 이를 끓이는 방식이다. 서해와 남해에서 시행되었다.
해수의 염도는 약 22.5‰이고, 함수의 경우는 약 2025‰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동해에서도 염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염전법을 일부 시행하기도 하였다.
염전법 공정은 크게 2가지이다. 짠물을 얻는 공정과 짠물을 끓이는 공정이다. 짠물을 얻는 공정은 염정(鹽井)의 구조에 따라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염정은 해수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여과장치이면서 짠흙으로 염도를 높이는 시설이다.
하지만 갯벌을 곱게 여러 번 갈아 말리는 과정을 통해 짠흙을 만든 뒤, 이 흙에 해수를 통과시켜 얻는 원리는 같다.
소금가마 중 회가마[土盆]는 조개껍질이나 굴껍질을 태워 얻은 회로 만들었고, 쇠가마[鐵盆]는 무쇠로 만들었다. 조선 전기에는 서남해에서는 회가마를, 동해에서는 쇠가마를 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서남해에서 쇠가마, 동해에서 회가마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의 음식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정조지(鼎俎志)에서는, 쇠가마를 쓰거나 해수를 끓여 얻은 소금은 품질이 좋지 않으니, 장을 담글 때는 반드시 서남해의 갯벌에서 추출한 자염을 사용하라는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의 기사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이 같은 소금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첨가하였다. 이는 소금 품질에 대한 당대의 인식을 보여준다.
염전법은 염전제방의 유무를 기준으로 무제(無堤)염전법과 유제(有堤)염전법으로 나뉜다. 또한, 해수를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입빈식(入濱式)과 양빈식(揚濱式)이 있다. 보편적인 제염방식은 입빈식 무제염전이었으며, 서해와 남해[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주로 행해졌다. 유제염전법은 조선 후기에 동해와 남해[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시행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소금은 크게 2종이다. 정제염과 천일염이 그것이다. 정제염은 해수에서 염화나트륨 성분만을 추출하여 얻는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용되었다.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이온교환막을 이용하는 제법을 1979년 한주소금에서 도입하였고, 지금도 이 방식이 주로 쓰인다.
천일염 생산은 대한제국 말기 1907년 인천 주안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은 당시 식민지 전쟁과 제국주의 확장을 위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였다. 청나라의 수입 소금을 방어하여 보다 큰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의 주도로 대만의 천일염 제조법을 도입한 것이다.
천일염은 해수에서 바람과 햇볕으로 얻어내는 소금이다. 천일염전은 해수를 받아들이는 저수지, 염도를 점점 상승시키는 제1증발지, 제2증발지, 약 25‰의 염도를 지닌 해수에서 소금이 석출되는 결정지의 단계로 염전이 크게 구분된다. 천일제염의 장점은 연료와 기계가 필요 없고, 노동력도 자염업에 비해 훨씬 적게 든다는 점이다.
조선이 개항한 후, 1880년대부터 일본과 청의 소금이 자염보다 훨씬 싼 값에 수입되었으며, 청의 소금이 밀수입되기도 하였다. 1900년대 초가 되면 대만산까지 들어오면서 외국산 소금의 비중이 1/3까지 늘어났다.
중국과 대만의 천일염은 가격이 쌌지만 조선 소금인 자염의 맛과 색깔에 익숙했던 조선인이 적응하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자염과 비슷하게 이를 다시 가공하여 만든 재제염(再製鹽)이 생산되기 시작했다[1904년]. 재제염은 천일염을 해수에 녹인 뒤 다시 끓여 결정을 얻은 소금이다.
정제염, 천일염, 자염을 포함하여 천일염의 가공소금인 죽염, 구운소금이 들어간 식품 비교나 항암효과 등에 관한 최근 연구에서는 정제염보다는 천일염, 자염 등이 긍정적 효과를 보여준다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자염은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전통 제염법이고, 천일염은 100여 년 전에 일제에 의해 도입된 비교적 최근의 제염법이다. 이 두 방법은 갯벌을 이용한다는 점, 한국의 음식문화의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등에서 어촌문화의 독특한 특성을 보여준다. 2018년 4월 30일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