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명월진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조선족의 대표적인 집거지역이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합작한 동북항일연군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가 설치·운영되었던 곳이다. 명월진은 여러 조선족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 이름에는 이주민들의 애환과 염원이 담겨 있다. 현재는 젊은이들이 한국과 중국 연안도시로 빠져나가 조선족 마을의 공동화가 진행되면서 한족들이 유입되고 있다. 명월진은 53개의 행정촌과 73개의 자연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검은귀버섯 양식으로 유명하다.
정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
내용
명월진(明月鎭)의 여러 마을 이름에는 모두 이주한 조선민족의 애환과 염원이 담겨있는 지명이 많다. 스스로 개척해서 일군 마을이다 보니 그 자손들이 자자손손 뿌리내리는 마을로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태양촌, 홍광촌, 금풍촌, 민락촌, 발재촌 등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상도에서 이주한 조선인들이 정착한 발재촌은 초기 이주민들이 “재물이 피어나라.”라는 의미에서 ‘발재’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발재마을 주민들은 독립운동, 항일운동, 중국 공산화 등을 거치면서도 주변의 농경지를 개간하고 경작했고, 1970년대까지 조선족의 이주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70호 이상으로 호구 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발재마을 역시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과 중국 연안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조선족 마을은 공동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자리를 한족들이 채우고 있다.
명칭 유래
발해국 노주(蘆洲)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사람의 삶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대에는 봉금령으로 사람이 살지 않다가 차츰 인가가 늘어나면서 남강(南岡, 연길을 말함) 개간국 숭례사에 속했다. 1912년 연길현 제3구 옹성라자촌이 되었다가 1933년 돈화-도문철도가 개통하면서 명월구가 되었다. 명월촌, 명월시, 명월구로 개명이 거듭되었다가 1949년 안도현의 정부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명월진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안도는 명월구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설에 의하면, ‘못을 이용한 바위벼랑에 물 흐르는 소리가 부딪혀 메아리를 만들었기에 나는 소리’라고 하거나 “바위벼랑 위에 무리를 지어 놀던 꿩들의 우짖는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로 울렸는데, 마치 그 소리가 항아리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 “누군가 바위에 올라 소리를 지르니 마치 항아리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라고 하는 등 설이 분분하다.
현황
명월진은 만족생태풍경구, 명월호풍경구 등 수려한 자연환경과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장백산 아래 수려한 변경도시’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연길에서 백두산을 가기 위해서는 안도현의 명월진과 이도백하를 경유해야 한다. 명월진 영승촌은 검은귀버섯 양식으로 명성이 높다. 주민들은 ‘영승촌식용균전문합작사’를 설립하고 검은귀버섯, 표고버섯을 체계적으로 재배 · 생산 · 판매하고 있다.
참고문헌
-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김호림, 글누림, 2013)
- 『그 많던 조선족은 어디로 갔을까?』(정근재, 북인, 2005)
- 『환경매일신문』(2015.2.15.)
- 吉林·安圖(www.antu.gov.cn)
- 行政区划网(区划地名网)(www.xzq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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